2025년 12월 11일(목)

단기 수익보다 미래 축적... 롯데, 바이오 공장에 2772억 추가 투자

롯데그룹이 '바이오'를 향해 다시 한 번 굵은 선을 그었습니다. 설립 3년 차인 롯데바이오로직스에 2천억원이 넘는 자본을 추가로 투입하며, 누적 유상증자 규모가 1조원을 넘겼습니다. 재계 순위 5위 대기업이 당장 수익이 보장된 유통·부동산이 아니라, 긴 시간이 필요한 바이오라는 신사업에 꾸준히 자본을 실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지난 10일 롯데바이오로직스는 9일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397만8212주를 새로 발행하는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고 공시했습니다. 발행가는 주당 6만 9679원, 총 모집금액은 약 2772억원입니다. 이번 유상증자로 조달되는 자금은 인천 송도 바이오 캠퍼스 1공장 건설에 투입될 예정입니다. 송도 1공장은 연면적 6만 1191평 규모의 대형 바이오 공장으로, 2027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바이오 캠퍼스 제1공장 상량식에서 신유열 롯데바이오로직스 대표(왼쪽 첫번째)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롯데바이오로직스]지난 9월 롯데바이오로직스 송도 바이오 캠퍼스 제1공장 상량식. 가장 왼쪽이 신유열 신임 각자대표 / 서잔제공=롯데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2022년 설립된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기업입니다. 현재 롯데지주가 지분 80%, 롯데홀딩스가 지분 20%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지주사가 전면에서 키우는 바이오 플랫폼 회사입니다. 


롯데그룹은 2023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 시러큐스 공장을 1억 6천만달러(한화 약 2080억원, 당시 환율 1달러당 1300원)에 인수하면서 본격적인 CDMO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후 국내외 생산 거점을 단계적으로 늘려 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설립 이후 롯데지주와 롯데홀딩스는 네 차례에 걸쳐 롯데바이오로직스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약 8900억원의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이번 2772억원 추가 수혈까지 감안하면, 롯데바이오로직스에 투입된 그룹 차원의 자본은 약  1조 600억원입니다. 단기간 성과를 기대하기보다는, 바이오를 그룹 차원의 미래 먹거리로 보고 차근차근 기반을 다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롯데의 이러한 장기 투자는 기존에 가진 카드가 이미 탄탄하기에 돋보입니다. 롯데는 백화점·마트·마트형 아울렛·홈쇼핑 등 유통 계열사와 더불어, 대형 쇼핑몰과 오피스, 호텔·리조트 등 굵직한 부동산 자산을 폭넓게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산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도 비교적 예측 가능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럼에도 그룹은 익숙한 길에 머무르지 않고, 기술과 장기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 생산시설에 꾸준히 자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롯데 3세 신유열, 바이오 각자대표로 : 네이트 뉴스사진제공=롯데그룹


실적만 놓고 보면 아직은 투자 초기 단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매출 2344억원, 영업손실 801억원을 기록했습니다. 공장 신·증설, 인력 확충, 글로벌 품질·규제 기준을 맞추기 위한 초기 비용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대규모 바이오 공장 구축 과정에서 상당 기간 투자 위주의 재무 구조를 거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최근 그룹 정기 인사에서 신동빈 롯데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겸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부사장)이 박제임스 대표와 함께 각자대표이사에 오른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입니다. 신유열 신임 각자대표는 2023년 12월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맡은 데 이어, 이번 인사를 통해 바이오 사업의 최전선에 서게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번 유상증자를 두고 신유열 각자대표 취임 이후 오너 3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2000억원을 훌쩍 넘는 자금을 투입하는 의사결정은 단순한 상징성만으로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공장 투자 규모, 글로벌 CDMO 시장 전망, 주요 고객사와의 협력 가능성, 그룹 재무 여력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토대로 충분한 고민과 내부 회의를 거친 뒤 이사회에서 최종 결정되는 사안입니다.


결국 이번 선택의 본질은 인사나 이벤트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 그룹 차원의 중장기 전략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해 보입니다. 특히 재계 5위에 올라선 대기업 그룹이 유통과 부동산이라는 비교적 안정적인 영역에 안주하지 않고,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바이오 산업에 꾸준히 자본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메시지가 읽힙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인사이트에 "이번 유상증자는 그룹 차원의 장기적 안목을 갖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신사업의 성공을 위해 지속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Syracuse sit롯데바이오로직스 사옥 / 롯데바이오로직스 홈페이지


바이오는 긴 호흡이 필요한 산업입니다. 현재 1조원이 넘는 수익을 내는 삼성바이오로직스조차 약 5년간 연속 '적자' 기간을 거친 게 사실입니다. 공장을 짓고, 인력을 키우고, 글로벌 고객사와 신뢰를 쌓는 데만도 수년이 걸립니다. 


설립 3년 만에 유증 1조원이라는 숫자는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것입니다. 롯데그룹이 미래 먹거리 확보라는 원칙을 앞세워 자본을 투입한 만큼, 송도와 시러큐스에서 차곡차곡 쌓여 갈 생산 실적과 파트너십이 앞으로의 답을 대신해 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