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그룹은 지난 1일 2026년 사장단 인사를 단행하며 박상신 DL이앤씨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그룹은 건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실적을 정상화하고 재무 안정성을 끌어올린 공을 높이 평가했다고 설명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버티기 위해 검증된 리더십을 전면에 세운 인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건설·노동계 안팎에서는 정말 이런 타이밍에 이런 승진이 가능한 일이냐는 의문이 동시에 제기됩니다. 실적 개선을 이유로 내세운 인사 뒤에, 반복된 산업재해 사망 사고라는 그림이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11월) 17일 오전, 경남 창원시 진해구 부산항 진해신항 남측 방파호안 공사 현장. DL이앤씨가 시공을 맡은 이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바지선 선원이 작업 중 바다로 추락해 숨졌습니다. 사고 직후 작업은 전면 중단됐고,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입니다.
사고 당일, DL이앤씨는 박상신 대표 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시공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전 현장 긴급 안전 점검과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습니다. 안전 조직을 손질하고 최고안전책임자(CSO)를 교체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중대 사고가 터진 상황에서, 회사가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대부분 꺼낸 셈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5일 뒤, '박상신'이라는 같은 이름은 전혀 다른 자리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DL그룹이 성과와 역량이 검증된 리더십을 내세우며 발표한 2026년 사장단 인사 명단에, 박상신 대표의 부회장 승진이 포함된 것입니다. 그룹은 수익성 중심 선별 수주와 보수적 재무 운용을 통해 건설업 최고 수준의 재무 안정성을 확보한 점을 승진 배경으로 강조했습니다.
DL그룹 사옥 / 뉴스1
'산업재해 사망사고'에서 회사의 실책이 없다는 확인이 되지 않았음에도 '성과'를 이유로 부회장으로 승진된 것입니다. DL그룹이 관련된 작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1건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비판은 큰 상황입니다.
DL 계열사 현장에서의 사망 사고는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더 있었습니다. 8월 8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시 신곡동 DL건설 아파트 공사장에서 50대 하청 노동자가 6층 높이에서 추락해 숨졌습니다. 당시 노동자는 외벽에 설치된 추락방지용 안전 그물을 해체하다가 지지 구조물이 함께 무너지면서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이번 사고로 정부와 수사 당국은 DL건설과 모회사 DL이앤씨를 동시에 겨냥했습니다. 경찰은 DL건설 관계자 3명을 입건했고, 노동부와 함께 본사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DL건설은 강윤호 대표이사와 하정민 최고안전책임자(CSO)를 포함해 임원진, 팀장, 현장소장까지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 전국 현장 공사를 잠정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2022년 1월 27일) 이후, DL이앤씨의 사업장에서는 최소 9건의 사망 사고, 10명 사망이 있었습니다.
정치·행정 환경도 예전과 다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잇따른 건설 현장 사망 사고 이후, 중대재해를 반복하는 건설사에 대해 건설업 면허 취소와 공공 입찰 금지 등 법이 허용하는 최대 제재 수단을 모두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조달청 역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을 공공 분야 입찰 제한 사유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정부 전반이 산재 기업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는 분위기입니다.
박상신 DL이앤씨 대표 / 뉴스1
다만 DL그룹이 공식 설명대로 박 부회장의 실적과 재무 기여를 높이 평가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수익성 위주의 선별 수주, 재무 레버리지 관리, 신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는 평가는 실재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의문은 남습니다.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지 15일 만에 그 회사 최고경영자가 부회장으로 승진하는 것이 과연 상식과 맞느냐는 것입니다.
실적과 재무 지표가 좋으면, 현장에서 사람이 계속 숨져도 최고경영자는 승진할 수 있는 것이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DL그룹을 향하고 있습니다. DL그룹이 말로만 안전을 이야기하는 회사인지, 아니면 안전 성적표를 인사와 보상에 진짜로 반영하는 회사인지, 이번 인사는 그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
사진 제공 = DL이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