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놀자가 나스닥 상장을 추진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회사가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어 투자자들의 속도 타들어 가는 상황인데, 그 핵심 원인은 야놀자의 '진짜' 정체성에 대한 시장의 의문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야놀자는 스스로를 글로벌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기업이라고 규정하며 자신 있게 미국 시장 두드리기에 나섰지만, 정작 시장 관계자들은 여전히 숙박·여행 플랫폼(OTA)에 더 가까운 기업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회사는 13조~15조원대의 몸값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매출 구조가 SaaS 기업의 기준을 충족하는지, 그리고 그 수준의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습니다.
야놀자는 지난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를 주관사로 선정하며 미국 나스닥 상장 준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1년이 넘도록 공모 절차는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수진 총괄대표는 기업가치를 13조~15조원으로 기대하는 반면, 시장의 현실적 평가치는 10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관측이 꾸준합니다.
이수진 야놀자 총괄대표 / 사진제공=야놀자
거품 논란의 배경에는 야놀자가 자신을 '글로벌 SaaS 기업'으로 내세우며 소프트웨어 기업에 적용되는 고(高)멀티플을 요구하고 있지만, 시장은 야놀자를 플랫폼·중개 중심의 OTA 성격의 회사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 자리합니다.
수치를 보면 이러한 간극이 더욱 뚜렷해집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야놀자 매출은 7610억원 수준입니다. 이를 연환산하면 연 매출 1조원 안팎입니다. 매출 구성은 B2C 숙박·레저·교통 예약 중개와 B2B 호텔·리조트용 PMS(객실관리 시스템), 클라우드 솔루션 등이 뒤섞여 있습니다. 문제는 매출에서 솔루션형 B2B 비중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야놀자가 전체 매출에 글로벌 SaaS 기업과 동일한 멀티플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놀자가 스스로를 글로벌 SaaS 기업이라고 규정할 때, 시장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단순한 밸류에이션 배수가 아닙니다. 진짜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경기와 여행 수요에 따라 실적이 크게 출렁이지 않고, 고객사가 한 번 붙으면 이탈률이 낮은 상태에서 매출이 계단식으로 쌓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야놀자의 실적은 여전히 내수 여행 경기와 프로모션 강도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플랫폼 트래픽을 유지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 비용을 쓰는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숫자상으로는 SaaS 간판을 달았지만, 캐시플로와 수요 민감도만 놓고 보면 전통적인 여행 플랫폼의 특징이 여전히 짙다는 뜻입니다.
글로벌 기관투자가들이 보기에 또 하나의 걸림돌은 반복 매출의 질입니다. 해외 상장 SaaS 기업들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순히 매출 대비 기업가치 비율이 커서가 아니라, 장기 계약을 맺은 기업 고객이 꾸준히 늘고, 추가 투자 없이도 기존 고객에서 매출이 자연스럽게 우상향하는 구조가 검증돼 있기 때문입니다.
야놀자 사옥 전경 / 사진제공=야놀자
야놀자의 B2B 솔루션 사업은 성장세가 빠른 편이지만, 아직 국내 숙박업체 비중이 높고, 해외 체인 호텔이나 글로벌 리조트 그룹을 상대로 한 대형 레퍼런스가 충분히 쌓였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같은 돈을 주고 이미 전 세계에서 검증된 소프트웨어 회사를 살 수 있는데, 매출 규모와 고객 구성이 제한적인 아시아 OTA·하이브리드 모델에 최고 수준 프리미엄을 얹어 줄 이유가 크지 않다는 냉정한 계산이 작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쟁점은 야놀자가 요구하는 몸값이 글로벌 SaaS 상위권이 아니라 최상단 구간에 가까운 수준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 정도 가격을 설득하려면 단순히 매출 증가율과 성장성 스토리를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 경기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반복 매출, 장기 계약 기반 클라우드 비즈니스의 확대, 자유현금흐름 개선까지 한꺼번에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단계의 야놀자는 여전히 여행 수요와 마케팅 전략에 따라 실적이 출렁이는 플랫폼의 그림이 강하고, B2B 솔루션은 성장 중인 신사업에 가깝습니다. 시장이 야놀자를 온전한 SaaS가 아닌, SaaS와 OTA 사이에 걸쳐 있는 과도기적 모델로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내수 의존도가 높은 여행·숙박 플랫폼, 연 매출 1조원대, EBITDA 마진 10퍼센트 초반 수준의 기업에 EV/매출 10배, EV/EBITDA 100배 이상을 부여하기는 부담스럽다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2021년 유동성 장세에서 형성된 비전펀드 기준점(8조원대 밸류)을 지금의 시장 환경에서 그대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야놀자가 진짜 SaaS 기업으로 인정받고자 한다면, 상장 시점을 앞당기는 것보다 먼저 '보여줄 수 있는 숫자'를 바꾸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해외 호텔·체인 브랜드를 대상으로 한 클라우드 솔루션 매출 비중을 눈에 띄게 끌어올리고, 반복 매출 구조·장기 계약·낮은 이탈률·고객사당 매출 증가(ARPU)를 명확한 수치로 증명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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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까지는 야놀자가 어떤 간판을 내걸더라도 자본시장은 이 회사를 SaaS와 OTA 사이에 놓인 '혼합 모델'로 평가하고 그에 맞는 가격만 제시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야놀자의 나스닥 상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시장의 냉담함이라기보다, 회사가 바라는 정체성과 투자자가 인정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 기준에 맞춰 사업 구조와 기대치를 조정하느냐에 따라, 야놀자의 상장 시계는 빨라질 수도 있고 지금처럼 멈춰 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