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6일(토)

"언론사에 경찰 진입하니 협조하라"... 계엄 당일, 前소방청장이 이상민에게 받은 지시

비상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밤, 허석곤 전 소방청장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받은 전화 내용이 법정에서 상세히 공개되었습니다.


허 전 청장은 1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류경진 부장판사)에서 열린 이 전 장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사건 속행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했습니다.


허 전 청장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오후 11시께 소방청에 도착해 간부들과 상황판단 회의를 진행하던 중 오후 11시 37분께 이 전 장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1분 30초간 진행된 이 통화에서 이 전 장관은 먼저 소방 당국이 출동한 사건이 있는지 확인한 후, '소방청이 단전·단수 요청을 받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origin_언론사단전·단수지시관련답변하는허석곤소방청장.jpg허석곤 전 소방청장 / 뉴스1


허 전 청장이 없다고 답하자, 이 전 장관은 언론사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허 전 청장은 "장관 말씀이 빨라지며 한겨레·경향신문·MBC·JTBC·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빠르게 말했다"며 "빠르게 말씀하셔서 몇 번 되물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 전 장관은 '24시에 경찰이 그곳에 투입된다, 혹은 진입한다'고 말하며 '연락이 가면 서로 협력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라'고 지시했다고 허 전 청장은 증언했습니다.


허 전 청장은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듣고 특별한 연상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경찰이 24시에 언론사에 투입되면 안에 있는 분들이 저항하지 않겠나"라며 "언론사를 완전 장악하기 위해서 성을 공격하면 옛날에 성안에 물을 끊고 쌀을 끊고 하지 않나. 그래서 소방에 단전·단수를 요청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허 전 청장은 단전·단수가 소방청의 일반적인 업무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단전·단수는 소방에서 사용하는 용어도 아니다. 30년간 쭉 청장까지 했는데 단전·단수를 해 본 적도, 지시해본 적도 없다"며 "단전·단수를 하면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소방은 물이 필수인데 물이 차단되고 건물은 위험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2025.10.17 / 뉴스1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2025.10.17 / 뉴스1


전화를 끊은 후 허 전 청장은 이영팔 차장에게 '단전 단수가 우리 의무입니까'라고 확인했고, 이 전 차장이 아니라고 답했으며 다른 간부들도 '신중하게 생각하시라'고 조언해 결국 단전·단수는 소방청의 의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허 전 청장은 이 전 장관과의 통화 후 서울소방재난본부, 경기도 재난본부 등에 전화한 이유에 대해 "국회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충돌이 일어나고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서 시·도본부장에게 상황관리를 잘하라고 당부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이날 오후 증인으로 출석한 이영팔 전 소방청 차장은 "이 사건과 관련해 피의자로 입건돼 형사처벌 우려가 있다"면서 "허락한다면 증언을 거부하겠다"고 밝혔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오는 24일에는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의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김 전 청장은 지난 10일 증인으로 소환됐으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바 있습니다.


재판부는 이 전 장관 측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을 증인으로 추가 신청한 데 대해 추후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