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다음 주 일본 도쿄대에서 열리는 '도쿄포럼 2025' 무대에 섭니다. 단순한 포럼 참석이 아니라, 그가 수년째 강조해 온 '한·일 경제연대' 구상을 현실 논의로 끌어올리려는 행보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이 일본을 찾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직면한 저출산·고령화·인구 감소 문제에 대한 해법을 '연대경제'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11일 SK그룹은 최 회장이 오는 21일 도쿄대 야스다 강당에서 열리는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이어지는 비즈니스 리더 세션에서도 발언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올해 포럼의 주제는 '자본주의를 재고하다(Rethinking Capitalism)'입니다. 이 자리에서 최 회장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언급하며, 그 대안으로 한·일 협력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제시할 것으로 보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 사진제공=SK그룹
이 같은 접근은 최근 그의 발언과 맞닿아 있습니다. 지난 9월 요미우리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양국이 손잡으면 미국·중국·EU에 이어 세계 4위 경제권이 된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단순한 무역 확대가 아니라 산업·기술 생태계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최 회장은 특히 AI와 반도체를 한·일 협력의 핵심축으로 꼽아 왔습니다. 일본의 부품·소재 경쟁력과 한국의 시스템·플랫폼 기술을 결합하면 사회적 비용과 안보 부담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가 이번 연설에서 이 두 산업을 중심축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SK그룹은 반도체 소재, 배터리, AI 클라우드 등에서 일본 기업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대해 "완만한 연대가 아닌 EU식 완전 통합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CPTPP가 자유무역협정(FTA) 수준에 그친다면, EU식 모델은 제도·인력·산업 전반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다는 점에서 보다 급진적인 제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최 회장이 도쿄포럼에서 같은 논리를 다시 꺼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포럼에는 후지이 데루오 도쿄대 총장, 이와이 무쓰오 일본 기업경영자협회 수석부회장 등이 함께하며, 좌장은 박철희 일본 국제교류회 특별고문(전 주일대사)이 맡습니다. 한·일 양국의 학계와 산업계가 한자리에 모이는 만큼, 최 회장은 '민간 차원의 경제통합 논의'를 구체적 의제로 올릴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결국 최 회장이 일본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일본은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복원 국면에 접어든 현 시점에서, AI·반도체·에너지 등에서 실질적 협력의 여지가 가장 큰 파트너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제공=SK그룹
최 회장은 도쿄 무대에서 '한·일 연대경제'의 실천 가능성을 시험하고, 이를 아시아 자본주의 재설계의 모델로 제시하려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기업인의 행보를 넘어선 민간외교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다.
다만 정치·외교적 변수와 산업 간 이해 충돌이 여전히 존재하는 만큼, EU식 통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