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치료제 피나스테리드, 심각한 정신건강 위험 경고
탈모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제품명: 프로페시아, 프로스카)가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등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래전부터 알려졌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30일 동아일보는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메이어 브레지스(Mayer Brezis) 교수가 국제 학술지 '임상 정신의학 저널(The 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에 게재한 리뷰 논문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사진 / gettyimagesBank
보도에 따르면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수행된 8개의 주요 연구를 종합 분석했는데요. 미국, 스웨덴, 캐나다,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의 건강기록과 미국 FDA(식품의약국) 및 제조사의 내부 문건을 검토한 결과, 피나스테리드 사용자들은 비사용자에 비해 우울증, 불안, 자살 충동 등을 경험할 위험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연구진은 수십만 명이 이러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겪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연간 평균 640명 이상이 이 약물과 관련된 자살로 사망했을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약물의 작용 메커니즘과 장기적 부작용
피나스테리드는 1997년 미 FDA 승인을 받아 남성형 탈모 치료제로 출시되었으며, 젊은 남성에게 위험이 낮고 효과가 확실한 약물로 홍보되어 왔습니다.
이 약물은 테스토스테론이 DHT(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로 전환되는 것을 차단하여 탈모를 억제하는 작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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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나스테리드는 단순한 탈모 치료제 이상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약물은 기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스테로이드(예: 알로프레그난올론)의 균형을 교란시킬 수 있습니다.
동물 연구에서는 장기적인 신경 염증과 해마 구조 변화가 관찰되었으며, 복용 중단 후에도 수개월에서 수년간 지속되는 '포스트 피나스테리드 증후군'이 보고되었습니다.
이 증후군은 불면, 공황발작, 인지 기능 저하, 지속적인 자살 충동 등의 증상을 포함합니다.
규제 당국과 제약회사의 미흡한 대응
브레지스 교수의 논문은 FDA와 제약사 머크(Merck)의 대응 지연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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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DA는 2011년에야 우울증 부작용을 라벨에 추가했고, 자살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2022년에 이르러서야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경고 표시인 블랙박스 경고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내부 문서와 연구 자료에 따르면, 초기 경고 신호가 존재했음에도 충분한 관리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2011년 FDA가 기록한 피나스테리드 관련 자살 사례는 18건에 불과했지만, 전 세계 사용량을 감안하면 실제 수치는 수백 건에 달했어야 한다고 논문은 주장합니다.
제조사 머크는 "무엇보다도 환자 안전이 중요하다"고 밝혔지만, 자사가 주도한 안전성 연구는 전무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브레지스 교수는 "피나스테리드가 낮은 의학적 필요를 가진 미용 목적 약물로 분류되면서, 심각한 부작용에도 규제와 연구가 소홀히 진행됐다"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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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약은 생명을 살리는 치료제가 아니다. 단지 '머리카락'에 관한 문제다"라며, 미용 목적 약품으로 인해 전 세계의 수많은 남성이 심각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연구팀은 즉각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미용 목적의 피나스테리드 사용 중단, 시판 후 안전성 연구 의무화, 자살 사례 조사 시 약물 복용 이력의 체계적 기록 등의 조치를 권고했습니다.
연구진은 이 논문을 한 피해자에게 헌정했습니다. 그는 탈모 치료를 위해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기 시작했으나, 평소 건강하던 그는 복용 일주일 만에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빠져들었고, 약물 중단 후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최고의 전문가들에게 치료받았음에도 나아지지 않은 그는 몇 달 뒤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