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5일(금)

[신간]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작가, 첫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으로 문단의 주목 받아


2025 젊은작가상 수상작 '바우어의 정원'으로 문학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강보라 작가가 첫 소설집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출간했다. 


지난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티니안에서'로 등단한 지 4년 만에 선보인 이 작품집은 신인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완성도 높은 7편의 단편을 담아냈다.


9791141610258.jpg사진 제공 = 문학동네


약 15년간 주·월간지 기자로 활동하며 다져진 문필력과 대중의 관심사를 정확히 짚어내는 감각이 돋보이는 강보라의 소설은 안정적인 구성과 전개, 예술과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 날카롭고 세련된 유머로 독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기자 출신 작가답게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그의 작품은 특히 미시적 관계망을 유려하고 세밀한 필치로 그려내는 데 탁월하다.


소설집의 제목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은 지난 196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연구에서 차용한 것으로, 같은 대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는 '낯섦'과 그로 인한 긴장관계를 암시한다.


강보라는 이러한 낯섦을 통해 타인의 시선 속에서 피사체가 되어 살아가는 인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다양한 경계와 정체성을 탐색하는 강보라의 소설 세계


데뷔작 '티니안에서'부터 젠더, 인종, 국적 등 인간이 안고 살아가는 정체성의 문제를 예리하게 짚어낸 강보라는 소설집 전반부에서 사회·문화·경제적 자본의 격차가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가시화한다.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는 중산층 '순혈' 문화인 남편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미술계 종사자 '재아'가 발리 여행에서 평소 멸시했을 배낭여행자들에게 의외의 매력을 발견하는 과정을, '신시어리 유어스'에서는 성공한 선배를 선망하면서도 박탈감을 느끼는 잡지사 에디터 '단'의 복잡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른바 '열대 3부작' 이후 작가는 소설 스타일에 변화를 주며 '빙점을 만지다'와 '직사각형의 찬미'에서는 돈이라는 구체적 가치와 문학, 예술 같은 추상적 가치 사이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운다.


'빙점을 만지다'의 문학도 '동표'와 '직사각형의 찬미'의 새신부 '나'는 각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소설집 후반부에 이르러 강보라의 인물들은 서로의 차이를 경계하기보다 존중하고 이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는 각자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가는 세 예술가의 우정을, '바우어의 정원'에서는 유산이라는 공통된 아픔을 겪은 두 배우의 마주침을 그리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낸다.


강보라의 소설은 우리 각자가 지닌 차이를 아름답고 독창적인 지문의 무늬로 끌어안으며,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