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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세로 별세한 가수 현미...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함께한 '한국 대표 디바'였습니다

85세로 별세한 가수 현미는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현대사의 아픔을 어루만진 가수로 평가받는다.

인사이트현미 / 뉴스1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가수 현미가 오늘(4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37분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현미가 쓰러져 있는 것을 팬클럽 회장 김모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현미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세상을 떠났다. 


현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후 그녀를 향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까지도 예능 방송에 출연하며 근황을 전했던 터라 팬들의 상심이 큰 상황이다. 


인사이트MBC 스페셜 '이산가족 상봉특집- 이산'


1937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현미는 아픔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음악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 


1·4 후퇴 때 부모님, 6남매와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때 두 동생과 헤어져야 했다. 


그는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 칼춤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방송을 취소한 여가수 대신 무대에 오르며 우연히 가수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스무 살이던 현미는 '여대생 가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현시스터즈로 정식 데뷔하게 된다. 


인사이트YouTube 'MBCNEWS'


유명 작곡가인 이봉조의 눈에 띄어 '아, 목동아'라는 팝송 번안곡의 음반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현미는 솔로 가수로 나서게 됐다. 


당시 녹음하던 현미의 성량이 너무 커 다른 가수들과 다르게 몇 발짝 떨어져서 곡을 녹음했다는 일화는 꽤 유명하다.


1960년대 그는 한국형 재즈 팝 디바로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62년 발매된 '밤안개'가 큰 히트를 쳤다. 


이어 '보고 싶은 얼굴(1963)',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무작정 좋았어요'(1966), '몽땅 내 사랑'(1967), '별'(1971) 등 무수한 히트곡을 남겼다. 


인사이트YouTube 'MBCNEWS'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디바로 떠오른 현미는 당시 여성 가수들 중에서도 독보적이었던 풍부한 성량과 무대매너, 화려한 비주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70년대부터는 '현미 노래교실'을 만들어 인생 제2막에 성공했다. 동시에 다수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입담을 자랑하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성인가요 트롯 장르로 전향해 대한민국 대표 가수를 또 한 번 입증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현미는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한국의 아픈 역사를 노래로 승화시키며 국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진 국민 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인사이트KBS 2TV '불후의 명곡'


베트남 전쟁 때는 위문 공연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현미는 "가수 생활 중에 베트남 전쟁 위문공연이 가장 보람이었다"며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보여왔다. 


2007년에는 데뷔 50주년 기념 앨범이자 3번째 음반인 '마이 웨이'를 발매했고, 같은 해 50주년 골든 콘서트를 개최해 팬들을 만나기도 했다. 


인사이트KBS 2TV '불후의 명곡'


지난 2017년에는 '내 걱정은 하지 마'란 곡을 발표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2020년 OBS '명불허전Ⅱ'에서 "아흔까지 노래하고 싶다"라는 소망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현미는 "대극장에서 60주년 콘서트를 하는 게 소망이다"고 밝혔다. 


비록 현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국민들 가슴에는 그의 명곡들이 고스란히 자리 잡고 있다. 


한편 현미의 빈소는 미국에 거주하는 두 아들이 귀국한 뒤에 차려질 예정이다. 조카인 방송인 한상진은 일본에서 급히 귀국편을 알아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노사연은 스케줄을 마치는 대로 고인을 찾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