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족들의 '짐꾼' 노릇하다가 '루이비통' 가방 만들어 '귀족'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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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패피들의 명품 가죽 가방의 아이콘 '루이비통' 루이비통 창업주 귀족들 사이에서 '짐꾼'으로 유명


[인사이트] 황성아 기자 = 셀럽들의 공항패션에 한 번쯤은 등장하는 명품 브랜드 가방이 있다.


곳곳에 로고가 새겨져있는 제품으로 유명한 '루이비통'이 사연의 주인공이다. '루이비통'은 이미 패피들 사이에서 질기고 튼튼한 가죽 가방으로 유명하다.


여기저기 부딪혀도 쉽게 긁히거나 오염되지 않고, 멋스러운 디자인 덕에 이동이 잦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루이비통'이 '튼튼한 가방'의 이미지를 갖기까지는 창립자의 남다른 '경험' 없이는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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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귀족들 여행 짐 싸주던 루이비통


'루이비통'의 창립자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어릴 적부터 돈을 벌기 위해 귀족들의 여행 짐을 싸주는 짐꾼이었다.


당시 프랑스 귀족들이 부피가 크고 화려한 드레스 수십 벌을 나무 상자에 담아 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짐꾼으로 일하던 루이비통은 새로운 여행가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귀족들이 담아 다니던 나무 상자는 너무 쉽게 파손돼 옷이 손상되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이미 짐꾼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그였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새로운 여행가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인사이트1870년 루이비통이 최초로 만든 여행 가방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 1stdibs.com


평평하면서도 튼튼한 가방 제작한 루이비통 


얼마 후, 루이비통은 평평하면서도 튼튼한 여행 가방(트렁크)를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처음 제작한 여행 가방은 나무와 금속으로 이루어진 트렁크였다.


당시 여행용 트렁크들의 상판은 둥글고 물기에 취약하며 무게는 무겁고 견고하지 못했다. 루이비통은 이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서로 쌓기 쉽게 각지고 평평하게 만들었다.


또 방수 처리를 함으로써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 때에도 옷이 상하지 않도록 했다. 그렇게 탄생한 상품은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Gray Trianon Canvas)'였다.


인사이트루이비통이 제작한 여행 가방 / thedesignaddicted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몰이 한 루이비통의 여행 가방 


출시된 후 루이비통의 '그레이 트리아농 캔버스'는 실용성,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으로 귀족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누렸다.


이후에도 루이비통은 다양한 여행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단순히 많이 담을 수 있으면서도 튼튼한 가방을 제작하기보다,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요트 여행을 자주 가는 사람들을 위해 그는 '스티머백'을 제작했다.


'스티머백'은 장시간 여행하는 사람들이 입는 옷과 입지 않는 옷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하며 수납이 쉬운 것이 특징이다.


인사이트루이비통이 만든 세로형 트렁크 / mediaanarchist


사용자의 필요성에 따른 다양한 여행 가방 선보인 루이비통 


또 자주 이동하는 귀족들에게는 옷장 같은 '세로형 트렁크', 작가와 기자들에게는 간이식 책장이 있는 트렁크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루이비통은 짐꾼으로써의 유명세가 아닌, 여행 가방 브랜드의 창시자로 자리를 굳건히 해나갔다.


그러다 1867년 루이비통의 여행가방이 인기몰이 하자 이곳저곳에서는 모조품이 대거 등장했다. 


이에 루이비통은 자신의 브랜드 이미지에 차별화를 두기 위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모노그램 'LV'와 로고 디자인을 생각해냈다. 또한 갈색 줄무늬 색으로 디자인을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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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품 등장…모노그램·로고 디자인 개발한 루이비통루이비통 타계 후 경영에 나선 조르주 비통…루이비통 성장 견인


1888년 '루이비통'은 타 브랜드가 쉽게 모방할 수 없는 '다미에 컬렉션'을 선보이며 승승장구를 한다.


처음에는 가난한 짐꾼에 불과했지만 예술적이고 실용적인 가방을 제작해 귀족 못지 않은 유명세를 얻으면서 막대한 부와 명성을 동시에 누렸다.


기쁨도 잠시 그는 얼마 후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1892년 2월 숨을 거둔다. 하지만 루이비통 브랜드는 더 크게 성장했다.


루이비통의 아들 조르주 비통(Georges Vuitton)은 아버지가 남긴 브랜드가 세계적인 브래드가 될 수 있도록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 타계 후 1년 뒤인 그는 미국 시카고 만국 무역 박람회에 '루이비통' 제품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입지를 공고히 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사람들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는 창업주가 있었기에 오늘까지 루이비통이 명품 브랜드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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