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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김지현 기자 = "한국 축구 팬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카를로스 케이로스(Carlos Queiroz) 이란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원정에서 무승부를 거둔 것에 대해 만족감을 감추지 못하며 본인이 승자라는 여유를 보여줬다.
케이로스 감독이 이끄는 이란 대표팀은 지난달 31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8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한국 축구대표팀과의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경기 결과는 무승부였지만 사실상 이란 대표팀이 이긴 것과 다름 없었던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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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6만여 붉은 악마들이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지옥의 원정 경기'였고, 또 1명이 퇴장당해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기 때문. 하지만 이란 대표팀은 한국 대표팀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며 무실점으로 승점 1점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케이로스 감독도 이 사실이 기쁜지 경기가 끝나자 환호성을 내지르며 마치 이란이 월드컵을 우승한 것 같은 격한 세레모니를 했다. 그리고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승자라는 여유에 온갖 미사여구를 쓰면서 한국 축구를 향한 칭찬 아닌 칭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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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로스 감독은 "먼저 한국 축구팬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엄청나게 많은 팬들이 모여서 좋은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할 수 있었다"며 "내 인생에서 이렇게 힘든 경기는 처음이었다. 한국과 같이 좋은 팀과 경기를 하게 돼 기쁘다"고 한국을 치켜세우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손흥민을 지칭하며 "36년 감독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수(손흥민)에게 유니폼을 달라고 했다"며 "손흥민이야말로 전 세계 축구팬들이 월드컵에서 보고 싶어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언뜻 들으면 한국 축구와 손흥민을 칭찬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날 대표팀이 졸전을 펼쳤다는 것과 손흥민(컨디션이 100%가 아니었다)이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케이로스 감독의 이번 발언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 축구대표팀에 있어 '밉상'인 동시에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다. 이번처럼 한국 축구를 조롱하는 듯한 발언(밀당)을 자주했고 또 압도적인 경기력을 뽐내며 5전 4승 1무(한국 기준 1무 4패)의 성적을 거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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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국내 축구팬들은 케이로스 감독을 능력은 좋지만 말썽만 부리는 감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케이로스 감독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그가 대단한 명장임을 알 수 있다.
케이로스 감독은 1991년 포르투갈 축구대표팀을 시작으로 스포르팅 리스본,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감독을 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보좌하는 수석 코치를 지낸 바 있다.
그리고 현재는 이란 축구 역사상 최장수 및 최다 경기 출전 기록(74경기)을 세우며 역대 최고의 감독으로 군림하고 있다. 성적 또한 46승 20무 8패(승률 62.2%)로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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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축구대표팀은 경력과 능력이 아주 뛰어난 케이로스 감독을 상대로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며 그가 이란 대표팀에 부임한 2011년부터 지금까지 조롱만 당하고 있다.
이에 이 상황을 타개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어제 경기력만 놓고 봤을 때 한국 대표팀이 이란 대표팀과 케이로스 감독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일은 당분간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케이로스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 대표팀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케이로스 감독은 "이란이 세계 축구에서 높은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이란 대표팀은 자국에서 많은 관심을 못 받고 있다. 열약한 환경에서 열심히 한다. 세계 축구 팬들이 이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응원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