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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금인가?"…무령왕릉서 나온 팔찌를 구부려본 박정희

박정희 정권 당시 일어났던 한국 고고학계의 흑역사 '무령왕릉 졸속 발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인사이트무령왕릉 / 연합뉴스


[인사이트] 이별님 기자 = 박정희 정권 당시 일어났던 '무령왕릉 부실 발굴 사건'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선 후기 화가 장승업의 걸작 기명절지도를 미국 대사에게 멋대로 선물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당시 진행된 무령왕릉 발굴 작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무령왕릉이 부실 발굴 작업으로 영구 손상을 입었다는 점에서 더욱 논란이 커지고 있다.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은 백제 제25대 왕 무령왕과 왕비의 능으로 사적 13호에 등록돼 있다.


인사이트무령왕릉 내부 / 연합뉴스


무령왕릉은 무덤의 축조 시기와 피장자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덤으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중국 남조식 벽돌무덤 형태로 축조돼 이 안에는 국보급 유물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무령왕릉 발굴 작업은 1971년 7월 송산리 5, 6호 고분의 배수로 공사 중 왕릉의 입구가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약 1,50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무령왕릉이 그 장엄한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은 물론 온 나라가 들썩였다.


인사이트무령왕릉 발굴 당시 모습 / 연합뉴스


발굴현장에는 고분 안을 들여다보려는 취재 기자들과 구경 인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이 과정에서 청동 수저 등 유물 일부가 훼손되기도 했다.


때문에 당시 발굴단장이었던 김원룡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몰려드는 인파로 수습이 곤란해지기 전에 발굴을 조속히 끝내기로 결정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들여서 발굴 작업을 진행해야 했지만, 고고학 전문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이런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김 전 관장은 1,500년 동안 지하에서 잠들었던 무령왕릉을 단 17시간 만에 발굴하는 있을 수 없는 실책을 저질렀다.


인사이트발굴 당시 무령왕릉 내부 바닥 / 연합뉴스


이 같은 졸속 발굴로 인해 무령왕릉 안에 있던 수많은 유물들은 물론 벽화와 왕릉 내부 벽면 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


훗날 김 전 관장은 자신의 유고집에 당시 무령왕릉 발굴은 일생일대의 발굴이자 가장 수치스러운 실패였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유적을 발굴하고 보존하는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는 당시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안타깝게도 박정희 정권은 무령왕릉 졸속 발굴의 책임자 처벌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무령왕릉 훼손에 일조하기까지 했다.


인사이트무령왕릉에서 발글된 왕비의 은팔찌 / 연합뉴스


전국이 왕릉 발굴 조사에 들떠있었던 만큼 박 전 대통령도 여기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발굴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기 위해 직접 청와대로 가지고 갔다.


김 전 관장 밑에서 발굴작업을 진행했던 조유전 전 국립민속박물관장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이게 순금인가?"라면서 왕비의 팔찌를 휘어보는 등 문화재를 훼손했다.


조 전 관장은 "이를 본 김 전 관장이 '순간 팔찌가 손상될까 봐 가슴이 철렁했다'고 회고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무령왕릉 졸속 발굴 사건은 한국 고고학계의 흑역사일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적으로 큰 손실로 기록됐다.


인사이트무령왕릉 발굴 당시 모습 / 연합뉴스


졸속 발굴로 인해 훼손된 벽화 및 유물들은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를 말해줄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고, 왕릉은 1997년부터 영구 폐쇄됐다.


다만 무령왕릉 졸속 발굴 사건으로 우리가 얻은 교훈 역시 적지 않다.


1,500년 전 무령왕 대 당시 중흥기를 맞이했던 백제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파악할 수 있게 됐다는 점과 한국 고고학계에 다시는 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겠다는 교훈을 남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나라 '문화재'를 미국대사에게 '선물'로 준 박정희 전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선 후기 천재 화가 오원 장승업의 기명절지도를 새뮤얼 버거 전 주한 미국대사에게 선물한 사실이 전해졌다.


이별님 기자 byul@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