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5월 06일(수)

고종이 미국에 보낸 '을사늑약 저지' 비밀 친서, 121년 만에 실체 확인됐다

고종황제가 을사늑약 저지를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실물이 121년 만에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발견됐다.


6일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는 고종이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를 통해 비밀리에 전달하려 했던 대미 친서 원본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종 황제가 1905년 10월 을사늑약 체결을 막기 위해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실물 /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그간 헐버트의 회고록 등을 통해 친서의 존재와 내용은 알려졌으나, 고종이 직접 쓴 원문과 발부 날짜 등이 실물로 입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당 문서는 가로 42㎝, 세로 30㎝ 크기의 황색지 두 장에 붓글씨로 작성됐다. 문서 상단은 '大韓國大皇帝敬問(대한국의 대황제가 삼가 묻습니다)'으로 시작하며 총 506자의 한자가 담겼다. 


특히 '광무 9년(1905) 10월 16일 한성 경운궁에서'라는 작성 시점과 장소 아래 고종의 성함과 함께 '황제어새'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황제어새는 고종이 직접 소장하며 대외 국권 수호에 필요한 문서에만 직접 찍어 사용했던 것"이라며 사료적 가치를 평가했다.


고종은 친서에서 일본의 보호조약 강요를 "동맹국과의 신의를 저버린 터무니없는 배신행위이자 1904년 한일의정서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언급하며 미국이 주권 수호를 위해 최대한의 도움을 줄 것을 호소했다. 


호머 헐버트 박사가 고종의 친서를 영역한 노트 /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고종은 일본의 야욕이 단순한 보호국화를 넘어 "병취(병합) 하려고 한다"는 점을 명확히 간파하고 "이는 만국공법이 단연코 허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성토했다.


당시 고종은 이 친서를 헐버트 박사에게 맡겨 미국 공사관 외교행랑 편으로 비밀리에 부쳤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은 헐버트의 면담 요청을 거절했고, 결국 친서는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된 뒤인 11월 25일에야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달됐다. 


김동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장은 30여 년간의 추적 끝에 지난 4월 21일 미국 현지에서 헐버트 유족과 함께 친서 원본과 헐버트의 친필 영문 번역본을 직접 확인했다.


김 회장은 "고종의 헐버트 대미특사 파견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번 친서 발굴을 계기로 정부와 학계가 헐버트의 숭고한 한국 사랑을 우리 독립운동사에 올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의 압박에 맞서 주권을 지키려 했던 고종의 필사적인 외교 노력이 담긴 이 문서는 121년의 긴 세월을 돌아 마침내 그 실체를 세상에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