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호흡기에 의지해 힘겹게 내뱉은 임종 직전의 한마디도 법적 효력을 갖는 유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건강 상태가 위중한 고인의 마지막 의사를 존중해 '구수증서 유언'의 요건을 기존보다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는 취지다.
4일 대법원 민사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반환 소송에서 유언의 효력을 부정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원심이 유언 효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고인 B씨는 2021년 4월 23일 병실에서 변호사와 수증자 A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전 재산을 A씨에게 증여한다"는 취지의 유언을 남겼다.
A씨가 유언 내용을 받아 적어 낭독했고 변호사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촬영했다. B씨는 유언 사흘 뒤 세상을 떠났다. 당시 영상 속 B씨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한 채 예금 계좌번호 등을 어눌한 발음으로 겨우 읊었다.
스스로 유언 전문을 말하기 어려운 상태였으며 일부 재산 내역은 타인의 도움을 받아 기억을 보완했다. 이후 A씨는 법원에서 유언 검인을 받았으나 은행 측이 예금 9600여만 원의 지급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B씨가 계좌번호를 언급할 수 있었던 만큼 녹음 방식의 유언이 가능했다고 본 것이다.
민법상 구수증서 유언은 질병 등 급박한 사유로 다른 방식의 유언이 불가능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보충성'을 갖춰야 한다. 하급심은 B씨가 녹음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므로 이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건강 상태에 비춰 스스로 유언의 전체 취지를 육성으로 녹음해 녹음에 의한 유언을 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원심으로서는 위와 같은 사정들까지 면밀히 살펴보거나 심리해본 다음 이 사건 유언장이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으로서 요건을 갖췄는지 여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판시와 같은 사정만으로 유언장이 구수증서 유언 요건을 갖추지 못해 효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말았으니 구수증서의 보충성 내지 유언의 효력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