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을 마주한 강남 재건축의 상징, 압구정5구역에서 현대건설과 DL이앤씨가 정면으로 맞붙었습니다. 전통과 브랜드 무게감을 앞세운 현대건설, 실거주 가치와 구조 완성도를 전면에 내세운 DL이앤씨의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압구정한양 1·2차를 통합 재건축하는 압구정5구역 시공사 선정 입찰에서 현대건설과 DL이앤씨가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압구정동 490번지 일대에 지하 5층~지상 68층, 8개 동, 1397세대 규모로 조성되는 사업으로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는 1조4960억원에 달합니다. 올해 강남권 재건축 가운데서도 최대어로 꼽히는 이유입니다.
현대건설은 글로벌 설계사 Rogers Stirk Harbour+Partners와 손잡고 설계에 착수했습니다. 지난 4일 현장을 방문해 입지와 조망, 주변 환경을 점검했고, 11일에는 출근길 인사를 통해 조합원들에게 수주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RSHP의 수석 디렉터이자 공동 창립 파트너인 Ivan Harbour가 직접 현장을 찾은 점도 눈에 띕니다.
RSHP는 2007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Richard Rogers가 설립한 설계사로, 하이테크 건축의 상징으로 불립니다. 대표작으로는 Centre Pompidou, Lloyd's Building 등이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한강 조망을 극대화하고 도시 맥락과 조화를 이루는 프리미엄 주거벨트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압구정현대의 상징성 때문에 아직 재건축 적용 브랜드가 '디에이치'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압구정 지역에서 '현대'라는 이름이 지닌 무게는 크다"며 "수주를 자신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압구정2구역을 확보한 데 이어 3·5구역까지 연계 수주해 브랜드 타운을 구축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습니다.
DL이앤씨는 하루 앞선 10일, 임직원 200여명이 참여한 출근길 인사로 수주 참여를 공식화했습니다. 하이엔드 브랜드 '아크로'를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조형 경쟁이 아닌, 실제 거주 가치에 초점을 맞춘 설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DL이앤씨는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설계안과 실제 시공 결과 사이의 괴리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이에 설계 단계부터 구조와 시공 가능성을 정밀하게 검증해 '보여주기 위한 집'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쌓이는 주거를 구현하겠다는 방침입니다.
DL이앤씨 관계자는 "5구역은 압구정 한양아파트를 재건축하는 사업인 만큼, 단순히 '현대'라는 프리미엄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아니라고 본다"며 "현장 인사 역시 당사가 선제적으로 진행했고, 기존 2·3구역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만큼 차별화된 제안을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미묘합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압구정 아파트의 상징은 현대건설이지만, 5구역은 현대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은 '한양아파트' 구역이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며 "조합의 마음을 움직일 조건을 제시하는 쪽으로 표가 쏠릴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결국 이번 승부는 브랜드 상징성과 글로벌 설계 명가의 이름값을 앞세운 현대건설, 실거주 중심 설계와 아크로 브랜드로 승부수를 던진 DL이앤씨의 철학 대결로 압축됩니다. 압구정이라는 상징 공간에서 어떤 선택이 내려질지, 강남 재건축 판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길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