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증권에서 계좌 소유자가 알지 못하는 사이 수십억 원 규모의 주식과 현금이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민사 소송으로 번졌습니다.
피해자는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법정 구속됐던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입니다. 그는 2023년 발생한 해킹 피해로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며 미래에셋증권을 상대로 원상 복구와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지난 9일 금융투자업계와 미래에셋증권 등에 따르면 배 전 대표는 최근 서울중앙지법에 민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해킹으로 발생한 금융사고는 금융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전자금융거래법 조항을 근거로, 피해 계좌의 주식과 현금을 원상 복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사건은 2023년 10월, 배 전 대표가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된 직후 벌어졌습니다. 해킹 조직은 그가 수감 중이어서 휴대전화 인증 등 보안 절차에 직접 대응할 수 없던 점을 노렸습니다.
이들은 미리 확보한 배 전 대표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위조 신분증과 대포폰을 개통하고, 그의 미래에셋증권 계좌에 접근했습니다. 이후 주식 일부를 강제 매도하고 현금과 매각 대금을 여러 금융기관 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상 거래를 감지해 계좌를 동결했지만, 이미 출금된 일부 자금은 회수되지 못했습니다.
배 전 대표는 "현금 37억3000만 원과 주식 매도대금 39억3000만 원 등 약 76억6000만 원이 빠져나갔으며, 이 중 회수되지 못한 금액이 약 60억 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당시 매도된 주식이 현재 시세로는 약 110억 원에 이르므로, 손실액은 단순 유출액을 넘어선다"며 "계좌 관리 부실에 대한 증권사의 책임이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배 전 대표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회사 측은 "휴대폰 본인 인증, 정부 시스템을 통한 신분증 진위 확인, 케이뱅크의 1원 인증 절차 등 모든 절차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며 "시스템상의 보안 결함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피해자의 다른 증권사 계좌와 인터넷은행 계좌를 거쳐 자금이 유출된 만큼 모든 책임이 미래에셋증권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습니다.
피해 규모를 두고도 양측은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배 전 대표 측은 피해액을 현재 주가 기준으로 산정해 110억 원을 요구하는 반면, 미래에셋증권은 "당시 시가 기준 피해액은 76억6000만 원이며, 이 중 60억8000만 원이 이미 회수돼 실제 손실은 15억8000만 원 수준"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주식의 현재 시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민법상 특별손해에 해당하며, 이는 가해자가 그 사정을 미리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만 인정된다"며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습니다.
미래에셋증권 측은 "배 전 대표가 주장하는 현재 시가 기준 피해액은 법원에서 인정되기 어렵다"며 "회사 차원의 과실이 없는 만큼 손해배상 책임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한편 배 전 대표를 포함해 방탄소년단(BTS) 멤버 정국, 이동채 에코프로 회장 등도 같은 해킹 조직의 표적이 됐습니다. 이들은 수감 중이거나 군 복무 중이어서 외부 통신이 어려웠던 시기에 신분증과 휴대전화가 도용돼 금융계좌 접근 시도가 이뤄졌습니다.
정국은 군 입대 직후 자신의 증권계좌 명의가 도용돼 84억 원 상당의 하이브 주식이 빠져나갈 뻔했지만, 증권사가 이상 거래로 판단해 피해를 막았습니다.
이 사건의 총책으로 알려진 전모(34)씨는 태국에서 도피 중이던 지난해 4월 검거돼 8월 국내로 강제송환됐습니다. 전씨는 대기업 회장, 벤처기업 대표, 연예인 등 사회 저명 인사들의 개인정보를 해킹해 위조 신분증을 만들고, 알뜰폰과 인터넷은행 계좌를 개설해 총 390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