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 운정 신도시에 새로 들어선 '스타필드 빌리지'가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 아주 좋다는 말이 많이 나와, 평일 오후 아이와 함께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향했고, 도로를 달린 차량은 어느 새 주차장으로 들어섰습니다. 몇 바퀴 돌지 않아 바닥에 선명하게 적힌 글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WIDE'
처음 보는 영문 표기에 먼저 "뭐지?"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차를 주차하고난 뒤, 이 단어가 주는 울림이 묵직하게 느껴졌습니다. 이곳의 주차 구역은 우리가 알던 기존의 선들과는 사뭇 다릅니다. 칸이 유난히 넓습니다. 차 문을 끝까지 열어도 '문콕'을 할까 조마조마할 필요가 없습니다. 카시트에서 잠든 아이를 안아 내릴 때 허리를 비틀지 않아도 되는 여유,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 펼쳐도 남의 눈치 볼 필요 없는 넉넉함.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편안한지 금방 체감하실 겁니다.
사실 엄마·아빠들에게는 문을 반쯤만 열고 옆 차 긁을까 봐 땀 흘리며 아이를 '구겨 넣듯' 태우는 게 더 익숙했던 게 사실입니다. 스타필드 빌리지는 그 서글픈 익숙함을 단숨에 바꿔놓고 있었습니다.
공간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때
주차장에서 매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붉은 라인이 따로 그어져 있습니다. 유모차가 오가는 전용 길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안내선이 아닙니다. 운전자는 그 선을 마주하는 순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리게 됩니다. '이곳은 아이들이 다니는 공간'이라는 무언의 신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결국, 잘 만든 공간은 잔소리보다 무섭게 사람의 태도를 바꿔놓습니다.
최근 합계출산율이 2년 연속 반등하며 0.8명 선을 회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여전히 낮은 수치이지만, 바닥은 찍었다는 희망이 보입니다. 정용진 신세계끄룹 회장은 흥미롭게도 이 반등의 서막을 미리 알았던 것처럼 보입니다.
'오프라인 본업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 정 회장의 손길이 닿은 공간은, 물건을 파는 전략이 아닌 '공간을 설계하는 방식'부터 바꾸고 있다는 게 눈에 보입니다. 주차장의 넓은 폭은 바로 그 변화를 알리는 첫 번째 신호탄이었습니다.
부모의 '피로'를 읽어낸 치밀한 설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 오르면 공기의 흐름이 다시 한번 달라집니다. 복도는 유모차 두 대가 마주 지나가도 어깨 한 번 부딪힐 일이 없을 만큼 광활합니다. 천장 조명은 눈이 시리지 않고, 바닥재는 아이가 넘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만큼 폭신합니다.
가장 마음이 갔던 곳은 수유실이었습니다. 단순히 기저귀만 갈고 후다닥 나오는 '창고 같은 방'이 아니었습니다. 좌석은 넉넉하고 조명은 포근했습니다. 아이를 먹이는 일에만 치중한 게 아니라, 그 시간 부모가 느낄 고단함을 어떻게 달래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 인사를 나누는 엄마들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육아는 체력보다 감정 소모가 큰 일인데, 공간이 그 마음을 받아주니 사람들이 떠나질 않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최저가격이 줄 수 없는 '살아있는 시간'
매장 배치도 영리합니다. 아이 옷 가게 바로 옆에 엄마 옷 가게를 뒀습니다. 아이 물건만 사고 서둘러 나가는 게 아니라, 아빠가 아이와 쿠킹 클래스에서 반죽을 만지는 사이 엄마도 잠시 숨을 돌리며 자기 옷을 둘러볼 수 있게 구성돼 있습니다.
아이 아빠에게서 "애 것만 사지 말고 당신 것도 하나 골라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동선. 억지로 소비를 짜내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만족하며 머무르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물건이야 스마트폰 몇 번 두드리면 수만 가지 물건이 집 앞으로 배달됩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이 가족이 마주 앉아 온기를 나누는 물리적 시간까지 대신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AI 시대에 어떤 공간에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경험'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공간의 미래는 '얼마나 싸게 파느냐'가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보낸 기억'을 얼마나 근사하게 만들어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정 회장이 강조해 온 '체류형 복합몰' 전략이 이제는 '육아 친화'라는 구체적인 옷을 입고 우리 일상으로 들어온 모습입니다.
와이드 주차 한 칸, 유모차 전용 동선, 부모의 감정까지 고려한 수유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온라인은 빠르고 정확하지만, 아이의 웃음과 부모의 안도감이 겹쳐지는 그 찰나의 순간을 저장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스타필드 빌리지 운정에서 본 것은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물건' 대신 '하루'를 기꺼이 소비하게 만드는 공간의 힘이었습니다.
출산율은 감정 없는 숫자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공간은 진심이 담긴 태도입니다. 그 변화는 지금, 주차장 바닥의 흰 선에서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