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중립국 스위스에서 여성 징병제 도입을 위한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반대로 부결되었습니다. 유럽 전역에 안보 위기감이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스위스 국민들은 여성 의무 복무제에 대해 명확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스위스 연방의회가 발표한 국민투표 결과에 따르면, '시민 복무제' 개헌안은 반대 84.15%, 찬성 15.85%로 부결되었습니다. 투표율은 42.94%를 기록했습니다.
이번 개헌안을 제안한 시민단체 '시민 복무' 소속 노에미 로텐(37)은 여성 징병제가 진정한 평등을 실현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로텐은 현재 제도가 남성뿐만 아니라 군 복무를 통한 인맥과 경험에서 배제되는 여성에게도 차별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지지자들은 "위기에 맞설 수 있는 더 강한 스위스를 위해 모두가 일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며 개헌안 통과를 촉구했었습니다.
반면 스위스 정부는 개헌안에 반대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정부는 민방위 분야에 이미 충분한 인력이 확보되어 있으며, 필요 인원을 초과하는 추가 모집은 노동력 부족과 막대한 비용 증가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개헌안이 성평등 향상에 기여할 수 있지만, 자녀와 가족 돌봄, 가사 노동 등 무급 노동을 담당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추가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현재 스위스는 분단국가인 한국과 마찬가지로 징병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8세에서 34세까지의 남성이 병역 의무를 지며, 매년 약 3만 5000명의 남성이 징병됩니다.
스위스 연방 헌법에는 "모든 스위스 남성은 병역 의무를 진다. 여성은 자발적으로 군 복무를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번 개헌안은 이를 '스위스 시민권을 가진 모든 사람'으로 개정하려 했으나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스위스는 험준한 알프스 산맥을 배경으로 전 국토를 요새화한 국가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히틀러조차 침공을 포기할 정도로 국민들의 안보 의식이 높기로 유명합니다.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스위스 용병'은 유럽 각지에서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했습니다.
1527년 신성로마제국이 로마 바티칸을 침공했을 때, 스위스 근위대는 교황을 보호하기 위해 끝까지 싸웠고 198명 중 147명이 전사했습니다.
1792년 8월 프랑스 혁명기에는 파리 시민들이 왕실 타도를 위해 봉기했을 때, 루이 16세의 근위대가 도주하는 상황에서도 스위스 용병 786명은 왕을 위해 끝까지 싸우다 전원이 전사했습니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빈사의 사자상'이 스위스 루체른에 건립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