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차세대 전략으로 AI가 떠오르고 있다. 추천 알고리즘 고도화부터 쇼핑 에이전트 도입까지, 주요 플랫폼들은 AI를 앞세워 소비자의 '편리한 소비'를 돕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러한 흐름 속 신세계그룹의 접근은 다소 결이 다르다. 단순히 기존 서비스에 AI기능을 더하는 수준을 넘어, 유통 구조 자체를 AI중심으로 재설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신세계그룹은 이날 웨스틴 조선 서울에서 열린 'AI 커머스 사업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글로벌 AI기업 오픈 AI와 커머스 분야 전략적 제휴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온·오프라인 구분 없이 초개인화 기반의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그룹 전반에 적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혁신의 출발점은 이마트다. 이마트는 오픈 AI와 협업해 '검색 → 장바구니 → 결제 → 배송'의 전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는 완결형 AI 커머스 모델 구축을 추진한다.
또한 연내 'AI 쇼핑 에이전트'를 이마트 앱에 탑재해 주차 등록 자동화 등 매장 이용 편의 기능과 고객의 구매 이력·선호도를 반영한 맞춤형 쇼핑 리스트를 제공할 계획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초개인화 추천'의 연장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쇼핑 방식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에 가깝다.
플랫폼 이용자 관점에서 보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기존 쇼핑은 사용자가 검색창에 키워드를 입력하고, 수많은 상품 중에서 직접 비교·선택하는 구조였다.
반면 AI 에이전트가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이 과정이 축소된다. 예를 들어 매주 장을 보는 이용자라면, 이제는 "무엇을 살지" 고민하기보다 AI가 미리 구성한 장바구니를 확인하고 수정하는 수준으로 역할이 바뀐다.
'찾는 쇼핑'이 '제안받는 쇼핑'을 넘어 '위임하는 쇼핑'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이러한 주체 변화는 다른 유통 플랫폼 역시 지향하고 있다. 네이버 쇼핑은 추천 알고리즘을 강화하고 있고, 롯데마트 역시 AI를 활용한 맞춤형 장바구니 완성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이들 대부분은 기존 서비스 위에 AI를 얹는 방식에 가깝다.
반면 신세계는 접근 순서부터 다르다. 대규모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통해 연산 인프라를 먼저 확보하고, 그 위에 에이전트 서비스를 연결하는 구조다. 이는 단순히 '똑똑한 추천 기능'의 추가를 넘어 매장 운영과 유통 시스템 전반을 AI중심으로 재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이용자 경험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단순 추천 기능은 여전히 사용자의 '선택'을 전제로 하지만, 데이터센터를 통해 확보한 막강한 연산 능력은 정밀한 수요 예측과 재고 관리, 물류까지 연결되면서 추천과 공급이 동시에 맞물리는 구조를 만든다.
여기에 오픈AI의 에이전트 서비스가 결합되면, 사용자의 쇼핑 경험은 한층 더 단순화된다. 가령 GPT 대화창에서 "내일 저녁 가족 식사 메뉴를 준비해 줘"라고 요청하면, AI가 필요한 상품 목록을 생성하고 장바구니 구성부터 결제, 배송 예약까지 일괄 처리하는 방식이다.
신세계의 전략을 '치밀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AI기능을 빠르게 도입하기보다, AI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을 먼저 쌓고 그 위에 서비스를 얹는 순서를 택했기 때문이다.
유통업의 경쟁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어떤 상품을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이 싸움에서 신세계는 장기전을 택했다. AI의 빠른 도입으로 단기적 시장 우위를 택하는 대신, 결과적으로 차이를 만들 수 있는 기반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