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31일(화)

산은, 조원태 우군만은 아니었다... 이사·PMI·담보주식까지 걸린 한진 계약

시장에서는 한국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 10.58%를 오랫동안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해 왔다. 지난 26일 한진칼 정기주주총회에서도 조 회장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은 93.77% 찬성률로 통과됐다. 


하지만 주총 결과와 별개로 공시와 감사보고서를 뜯어보면, 산은을 단순한 백기사로만 보기는 어렵다. 통합 대한항공 추진 과정 곳곳에 산은의 사전 협의·동의권과 담보 장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인 2020년 11월 체결된 투자합의다. 당시 한진칼은 산은과 신주인수계약 5천억원, 교환사채 인수계약 3천억원을 통해 총 8천억원을 조달했다. 이를 대한항공에 대여하고, 대한항공이 다시 아시아나항공 영구전환사채 3천억원과 신주 1조5천억원을 인수하는 구조를 짰다. 통합 대한항공의 출발 자체가 산은 자금과 계약 위에서 설계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계약의 핵심은 자금 지원에만 있지 않았다. 공시에 따르면 이 투자합의에는 산은이 지명하는 사외이사 3인 및 감사위원 선임,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협의권 및 동의권 준수 등이 포함됐다. 감사보고서와 분기·반기 공시에 반복적으로 적시된 내용을 보면, 산은은 한진칼 및 대한항공의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장 지명권을 갖고 있다. 한진칼 및 주요 계열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한 사전 협의·동의권도 확보하고 있다.


사진제공=한진그룹


여기에 윤리경영위원회 설치·운영, 경영평가위원회의 대한항공 경영평가 협조 및 감독, PMI(Post-Merger Integration) 계획 수립·이행 책임까지 투자합의상 의무조항에 담겼다. 시장이 산은을 우호지분으로만 봐온 것과 달리, 실제 계약 구조는 이사회와 통합 실행, 핵심 경영안건까지 산은 권한이 걸쳐 있는 형태에 가깝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조 회장 개인 지분에 대한 '담보'다. 지난 18일 공시된 한진칼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조 회장은 보유 한진칼 주식 385만8869주를 산은에 담보로 제공하고 있다. 산은은 투자합의서상 위약 사유가 발생하면 처분위임계약에 따라 해당 주식을 처분할 수 있고, 조 회장 보유 지분 매각 시 함께 매각할 수 있는 권리도 갖는다. 2020년 당시 산은은 이 385만8869주가 조 회장 보유 한진칼 주식 전체라고 설명했다. 조 회장 개인 지분도 산은 계약과 분리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 구조를 감안하면 한진칼을 둘러싼 경영권 해석도 달라진다. 겉으로는 호반건설의 추격, 델타항공과 산은 등 우호지분의 방어 구도로 읽히지만, 더 안쪽에는 산은과의 투자합의 이행을 전제로 움직이는 지배구조가 놓여 있다. 특히 조 회장이 올해 말 통합 대한항공 출범을 직접 지휘하겠다고 내세운 상황에서, 이사회 구성, PMI 이행, 주요 경영사항, 계열사 주식 담보와 처분 문제에까지 산은의 계약상 권한이 걸려 있다는 점은 여러 해석을 낳게 한다. 


대한항공 측은 산업은행 관련 투자합의 내용에 대해 "공시된 내용 외에는 회사 입장을 밝히기 조심스럽다"며 "공시된 사실 위주로 봐달라"고 말했다. 또 당시 투자합의 이후 관련 조항은 계속 유효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회사 측은 공시 외 해석에는 조심스럽다는 입장이지만, 공시 내용만 봐도 산은을 단순한 우호지분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조 회장은 주총에서 재선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통합 대한항공을 둘러싼 실질 구조까지 완전히 자율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조원태 회장 / 뉴스1


시장이 산은을 우호지분이라고 불러온 사이, 산은은 이미 지분을 넘어 계약상 사전 협의·동의권과 담보 권한을 가진 플레이어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점에서 산은은 조 회장 체제를 단순히 뒷받침하는 우군이라기보다, 조건을 붙여 움직이는 계약 파트너에 더 가까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