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유럽이 다시 한번 에너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확산될 경우 유럽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3일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서유럽중앙은행(ECB)의 필리프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가격 급등은 단기적으로 물가에 상방 압력을 가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이같은 분쟁이 경제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레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변동성이 큰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물가 상승률이 여전히 ECB 목표치 2.0%보다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지금은 어느 정도 인플레이션 위험을 무릅쓸 만한 환경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유로존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1.9%로 목표치를 소폭 하회했지만, 에너지를 제외한 물가 상승률은 2.4%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에너지 가격 변동이 전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럽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물가가 급등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후 물가 안정화 과정에서도 에너지 가격 하락이 주요 역할을 했던 만큼, 에너지 공급 차질에 대한 민감도가 높은 상황입니다.
최근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응해 주요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하면서 에너지 공급 불안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노르웨이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특히 취약한 구조입니다.
ECB가 2023년 12월 발표한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와 천연가스 운송이 3분의 1 차단될 경우 국제유가가 당시 배럴당 80달러에서 50% 이상 상승한 13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른 상태를 유지할 경우 유로존 물가가 0.4%포인트 추가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0.1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날 국제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동시에 급등하면서 에너지 위기 시나리오가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유럽 가스거래의 중심지인 네덜란드 TTF거래소에서 천연가스 4월물 가격은 이란 공습 이전 메가와트시당 31.96유로에서 이날 낮 한때 63.75유로로 2거래일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습니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ECB의 통화정책 방향에도 변화가 예상됩니다. 그동안 시장에서 기대했던 정책금리 인하 가능성이 사라지고 오히려 금리인상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날 시장은 ECB의 금리인상 가능성을 60% 이상으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지난달 27일 40%였던 금리인하 관측과는 정반대 상황입니다.
레인 이코노미스트의 발언이 스태그플레이션 경고로 해석되는 가운데, 이날 발표된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월보다 0.2%포인트 오르면서 이러한 우려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시장에서는 인플레이션 우려로 정책금리 전망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단기물을 중심으로 각국 국채 금리가 이틀 연속 급등했습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달 초 통화정책회의에서 "유로화 강세가 인플레이션을 현재 예상보다 낮출 수 있다"며 물가 하방 리스크를 경계했었지만, 상황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시장은 미국의 군사작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독일 베렌베르크은행의 홀거 슈미딩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가격 상승이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4주 안에 유럽 경제가 위기를 맞을지, 회복 과정의 일시적 장애에 그칠지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란과의 전쟁에 4~5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