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개인 투자자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귀금속 시장의 급성장세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중년 여성층을 중심으로 한 금·은 투자 열풍이 세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 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은 광풍 뒤에 있는 중국의 아줌마(Auntie) 투자자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중국의 귀금속 투자 현황을 분석했습니다.
세계금협회(WGC)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투자자들이 구매한 골드바와 금화는 약 432톤에 달했습니다. 이는 전년 대비 28% 증가한 수치로, 지난해 전 세계 골드바·금화 구매량의 3분의 1에 근접하는 규모입니다.
중국 금협회가 지난 5일 발표한 통계를 보면 지난해 금괴·금화 수요는 전년 대비 35.1% 증가했습니다. 반면 치장용 금장신구 수요는 31.6% 급락했습니다.
베이징 최대 귀금속 상가인 차이바이 백화점에 따르면 50~65세 중국 여성들이 금괴 구매의 주요 고객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중국 투자자들의 귀금속 선호 현상은 투자 대안의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현지 부동산 시장은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고, 주식 시장은 높은 변동성을 보이며, 은행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전자산인 금과 은이 투자처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투자 접근성의 개선도 귀금속 투자 확산에 기여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위챗이나 알리페이 같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금 ETF(상장지수펀드) 등 귀금속 투자 상품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의 금 ETF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고, 상하이선물거래소의 금 선물 거래량도 연간 최고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현물 금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습니다. 금 시장과 보석상에는 골드바와 유리 항아리에 담긴 1그램짜리 황금 '콩'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줄을 서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높은 수요로 인해 중국 내 금·은 가격은 국제 기준가보다 프리미엄을 받고 거래되고 있습니다.
춘제를 앞두고 금은방을 찾은 베이징의 고교 교사 로즈 톈(43)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금은 자산 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기 때문에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설 연휴를 앞두고 귀금속 시장에서 금팔찌와 목걸이, 반지 등을 구매하며 수년간 자신과 친척들을 위해 수천달러 상당의 금을 사들였습니다.
국제 귀금속 시장은 각국 중앙은행의 매입 확대와 약달러 전망에 힘입어 지난해 강세를 지속했습니다. 달러 자산 비중을 줄이려는 헤지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금값과 은값은 지난해 각각 60%와 150% 넘게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차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를 지명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금·은 가격은 급락세를 보였습니다. 지난달 30일 하루에만 금 현물은 약 9.0%, 은 현물은 26.4% 급락했습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8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금 가격이 지난주 큰 변동성을 보인 것과 관련해 "중국에서 (시장)상황이 좀 무질서해졌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최근 금값은 전형적인 투기적 거래에 따른 급등락을 보였다"며 "중국 내 상황이 다소 통제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에서도 혼란이 컸습니다. 현지 SNS에서는 '부추 베기'를 당했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이는 잘라도 다시 자라는 부추처럼 개인 투자자만 반복적으로 손실을 본다는 뜻으로, 한국의 '개미 학살'과 유사한 표현입니다.
일부 은행은 귀금속 매수 관련 대출 한도를 축소하기도 했습니다. 베이징의 대형 귀금속 상가인 톈야(天雅) 시장의 한 판매 담당자는 WSJ 인터뷰에서 최근 가격 급락 이후에도 골드바 매입이 늘긴 했지만, 고객들 사이에서는 '기다려보자'는 관망세가 지배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WSJ는 "중국 투자자들이 투매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 아줌마 부대의 영향으로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은이 '밈 자산(유행성 자산)'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금 가격은 지난달 말 온스당 5,500달러를 돌파했다가 현재 온스당 5,1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며, 은도 최대 온스당 120달러를 기록했다가 현재 80달러 선을 오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