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가봉의 열대우림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동물인 둥근귀코끼리가 농작물을 파괴하는 이유가 최신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내 기생충을 치료하기 위해 농장을 '천연 약국'으로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온라인 미디어 카라파이아(Karapaia)에 따르면, 가봉 국립과학기술연구센터 연구진은 둥근귀코끼리들이 농장을 습격할 때 달콤한 과일은 외면한 채 바나나와 파파야의 줄기 및 잎사귀만 골라 먹는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가봉 국립과학기술연구센터의 스티브 응가마 박사는 농민들로부터 "코끼리들이 왜 맛있는 과일은 땅에 버리고 줄기와 잎만 먹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하소연을 반복적으로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롭게도 가봉 지역의 전통 의학에서는 바나나와 파파야의 줄기와 잎이 기생충 치료제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습니다.
응가마 박사는 코끼리들도 이 사실을 알고 약초를 먹어 스스로 치료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웠습니다.
연구진이 크리스탈 산맥 국립공원 주변에서 수집한 약 90개의 코끼리 배설물 샘플을 분석한 결과, 기생충에 감염된 둥근귀코끼리는 건강한 개체에 비해 바나나 줄기나 잎을 섭취할 확률이 16% 높았습니다. 또한 파파야나무를 긁는 행동도 25% 더 빈번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전 연구들에서는 바나나 잎 추출물이 양의 기생충 알을 죽이는 효과가 있고, 파파야 줄기의 액체 성분이 닭의 장내 기생충 억제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된 바 있습니다.
둥근귀코끼리들은 평소에도 식물의 잎과 가지를 섭취하지만, 기생충 감염 시에는 과일 대신 약효가 있는 특정 부위를 집중적으로 선택하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본 연구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우간다 침팬지 자가 치료 연구 전문가 미국 브라운대학의 엘로디 프레이먼 박사는 "둥근귀코끼리가 고도의 지능을 바탕으로 약초 지식을 전승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도 "약용 목적이라고 단정하기 위해서는 더욱 신중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물들의 이러한 자가치료는 영장류에서도 발견됩니다. 우간다의 침팬지들은 몸이 아플 때 항균 작용이 있는 식물을 섭취하며, 서로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오랑우탄이 약용 식물을 얼굴 상처에 발라 치료하는 모습이 관찰되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장 마르크 듀보스트 연구원은 "동물들이 치유 효과와 맛을 연관시켜 기억하고,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대로 전승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시아의 코끼리 조련사들인 마후트들은 예로부터 코끼리의 의학적 지식에 주목해왔습니다. 병든 코끼리를 숲에 놓아두면 스스로 필요한 약초를 찾아 몇 주 만에 회복하며, 코끼리가 선택한 식물들이 실제로 인간의 질병 치료에도 단서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응가마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가 둥근귀코끼리와 농민 간의 갈등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둥근귀코끼리에게 농작물 대신 기생충 치료제를 제공한다면 농업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입니다.
또한 둥근귀코끼리가 이용하는 식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에볼라와 같은 위험한 감염병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