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민들의 추억이 깃든 잠실야구장이 올해를 끝으로 45년간의 대장정을 마감합니다. 서울시는 2026년 12월부터 서울종합운동장야구장 철거 작업을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과 함께 문을 연 잠실야구장은 야구의 메카로 불리며 한국 야구사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해질녘 외야 너머로 펼쳐지는 붉은 노을과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치맥을 즐기는 팬들의 모습은 잠실야구장만의 독특한 풍경이었습니다.
잠실야구장이 들어선 송파구 일대는 1960년대까지 여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지역이었습니다. 가장 큰 잠실섬(360만 평)과 부리섬(30만 평) 등이 있었으며, 주민들은 새내터에서 나룻배를 타고 뚝섬으로 이동했습니다.
1960년대 말 신도시 조성 계획에 따라 잠실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한강 하류의 작은 섬들이 연결돼 큰 육지로 재탄생했습니다. 물고기를 잡거나 누에를 키우던 잠실 주민들은 서울시민으로 편입됐습니다.
1975년 황량한 잠실벌을 스포츠타운과 국제교류단지로 개발해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대한야구협회는 이 계획에 맞춰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유치를 선언했습니다. 당초 종합개발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던 야구장은 1980년 4월 17일 착공에 들어가 1982년 7월 15일 준공됐습니다.
고 김인호 건축가가 설계한 잠실야구장의 외형은 전통 악기인 장구 측면의 곡선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졌습니다.
126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완공된 야구장은 좌우 100m, 좌우중간 120m, 중앙 125m의 매머드급 크기로 웬만한 메이저리그 경기장보다 좌우중간이 깊고 넓습니다. 이는 세계선수권대회를 겨냥해 장타력이 떨어지는 한국 선수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됐기 때문입니다.
개장 경기는 경북고, 부산고, 북일고, 군산상고 등 4개교가 참가한 우수고교초청대회였습니다. 1982년 7월 17일 경북고 류중일이 부산고 김종석을 상대로 잠실야구장 1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프로야구 첫 경기는 1982년 8월 1일 롯데 자이언츠-MBC 청룡전이었습니다. 개장 첫해인 1982년에는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준비로 프로 경기가 단 세 차례만 열렸습니다.
1983년부터 MBC가 홈구장으로 사용했으며, 1986년부터 OB 베어스도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한 지붕 두 가족'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관중석은 개장 당시 3만500석에서 점차 고급화, 차별화를 거쳐 현재 2만3750석입니다.
2015년까지 잠실야구장에서 포스트시즌 중립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KIA 타이거즈는 12번 우승 중 9번을 잠실야구장에서 마무리했으며, 삼성 라이온즈도 8번 우승 중 5번을 잠실야구장에서 장식했습니다.
45년간의 역사만큼 사건사고도 많았습니다. 1990년 8월 26일 해태 타이거즈-LG 트윈스전은 잠실야구장 '최악의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LG가 10-0으로 크게 앞선 8회초 밤 9시 12분, 흥분한 해태 응원석 관중들이 몽둥이를 들고 그라운드에 난입했습니다. 이들은 기물을 부수고 쓰레기통에 불을 질렀습니다.
당시 관중 수는 3만100명이었으며, 무장 경찰 3개 중대가 투입돼 사고가 수습됐습니다. 경기는 1시간 7분간 중단된 끝에 10시 19분 속개돼 LG가 13-1로 승리했습니다.
1983년 6월 1일 김진영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 구속 사건과 1996년 7월 3일 쌍방울 레이더스-LG전에서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7명이 구속된 사건도 잠실야구장에서 발생했습니다.
잠실야구장이 돔구장으로 재건축되는 2027년부터 2031년까지 5년 동안 LG와 두산은 올림픽 주경기장을 대체 야구장으로 사용합니다.
야구장 공사가 진행 중인 주경기장은 주중에는 1,2층 1만8000석을 개방하고, 주말과 포스트시즌에는 3층까지 열어 3만4000석을 확보할 예정입니다.
2031년 말 완공될 새로운 돔구장은 3만5000석 규모의 최신식 시설로 건설됩니다. 2032년 돔구장 개막전은 2031시즌 성적에 따라 결정되며, 잠실야구장의 추억과 기록은 돔구장 한 켠에 기념관으로 보존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