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편집 플랫폼 카프윙의 조사에 따르면 유튜브 신규 가입자에게 추천되는 동영상 중 20%가 인공지능으로 제작된 저품질 콘텐츠 '슬롭'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지난 27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이 보도한 카프윙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별 상위 100개 유튜브 채널 1만5천개를 분석한 결과 278개 채널이 슬롭 콘텐츠만을 제작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들 슬롭 채널은 총 조회수 630억회, 구독자수 2억2100만명을 기록했으며 연간 1억1700만달러(약 1700억원)의 수익을 창출했습니다.
카프윙이 새로운 계정을 생성해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 500개를 분석한 결과, 104개가 슬롭 채널의 콘텐츠였습니다. 추천 영상 500개 중 3분의 1은 맥락 없이 자극만 제공하는 '뇌썩음' 영상으로 분류됐습니다. 올해 유행한 '이탈리아 뇌썩음' 영상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슬롭은 '오물'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2022년부터 인공지능으로 생성된 저급 영상을 지칭하는 '인공지능 슬롭' 표현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백과사전 출판사 메리엄-웹스터는 지난 15일 올해의 단어로 슬롭을 선정했습니다.
카프윙은 지난달 말 한국 기반 상위권 인공지능 슬롭 채널 11개의 합계 조회수가 84억5천만회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한국 채널 '3분 지혜'는 조회수 20억회를 기록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조회수를 보유한 채널로 조사됐으며, 연간 수익이 약 403만달러(5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채널은 갑옷을 입은 인물이 사자 떼의 공격에도 브레이크댄스를 추는 등 맥락 없는 가상의 인공지능 영상을 제작합니다.
가디언은 인공지능 슬롭 채널들이 우크라이나, 인도, 케냐, 브라질, 베트남 등 고소득 일자리가 적으면서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고 소셜미디어 규제가 느슨한 국가들에서 주로 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조사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채널 '반드라 아프나 도스트'는 인도 기반 채널로 24억회의 조회수를 달성했습니다. 이 채널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원숭이와 헐크 같은 강인한 인도 남성이 악마와 싸우는 맥락 없는 가상 영상을 제작합니다.
싱가포르의 '포우티 프렌치'(삐진 프렌치 불독), 미국의 '쿠엔토스 파시난테스'(매혹적인 이야기들) 등은 어린이를 주요 타깃으로 하는 영상을 제작해 수백만명의 구독자를 확보했습니다.
높은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영상 제작 방법을 거래하는 '인공지능 슬롭 생태계'도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습니다.
전염성 높은 콘텐츠 제작 비법을 판매하는 사기꾼들이 득세해 영상 제작자들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공지능으로 제작한 영상에 '인공지능 생성' 표기를 의무화하고 관련 영상들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정부는 인공지능 생성물 표시제 도입 등을 포함한 규제 방안을 발표했지만, 이는 인공지능 허위과장 광고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 인공지능 슬롭 채널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평범하거나 저급한 생산물이 새로운 창조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이탈리아 시각 예술가 프란체스코 디사는 지난 1일 '철학 살롱'에 기고한 '인공지능 슬롭이란 개념 자체가 쓰레기'라는 글에서 "우리가 '인공지능 슬롭'이라고 부르는 것은 새로운 도구가 널리 보급될 때마다 항상 나타나는 과잉 생산물"이라며 "광활한 실패의 들판에서 드물게 걸작이 피어난다"고 밝혔습니다.
유튜브는 가디언에 "콘텐츠 제작 방식에 관계없이 사용자에게 고품질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며 "유튜브에 올라오는 모든 콘텐츠는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이를 위반하는 콘텐츠는 삭제된다"고 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