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5일(금)

여성 리더십·글로벌 인재 앞세웠지만... 호반, 권력 핵심은 '2세' 김민성 부사장으로

호반그룹이 지난 1일 2026년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하면서 표면에는 '성과주의'와 '여성 리더십', '글로벌 인재'를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인사 면면을 살펴보면, 그룹 권력의 중심이 창업주 2세인 김민성 호반그룹 부사장(31)에게 사실상 수렴되는 구도가 더 분명지고 있습니다.


호반그룹에 따르면 이번 임원 인사에서는 부사장 2명, 전무 2명, 상무 3명, 상무보 9명, 이사 8명 등 총 24명이 승진했습니다. 그룹은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낸 인재를 전면 배치해 핵심 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인사"라고 설명했습니다.


무게중심은 단연 김민성 신임 부사장입니다. 1994년생인 김 부사장은 미국 UCLA와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MBA)을 거쳐 2018년 호반산업 상무로 입사했습니다. 이후 호반산업 전무, 호반그룹 기획담당 전무를 거치며 그룹의 주요 투자와 계열사 포트폴리오를 챙기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입사 7년 만에 그룹 부사장에 올랐습니다. 


김민성 신임 부사장 / 사진제공=호반그룹


호반그룹은 김 부사장에 대해 "주요 계열사 간 협력과 시너지 강화에 기여했고, 대한전선과 삼성금거래소 등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한 계열사의 성장을 견인하며 역량을 입증했다"고 강조합니다. 이번 인사를 통해 그룹 중장기 전략을 총괄하는 중책을 이어갈 것이라는 메시지도 덧붙였습니다.


김 부사장의 이름과 함께 반복해서 등장하는 계열사가 대한전선과 삼성금거래소입니다. 두 회사 모두 호반이 인수한 뒤 실적이 크게 개선된 곳으로, 이른바 '잭팟 M&A'의 대표 사례로 꼽힙니다. 


2021년 3월 호반그룹이 인수한 대한전선은 2024년 기준 연결 매출 3조2800억 원, 영업이익 1100억 원대의 잠정 실적을 올리며 매출 3조 원을 처음으로 넘겼고, 2025년 상반기에도 매출 1조7700억 원, 영업이익 500억 원대 실적을 내며 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수주잔고 역시 2조9000억~3조4000억 원 수준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대한전선의 성장축은 초고압 프로젝트와 해외법인, 그리고 향후 해저케이블 사업입니다. 회사는 최근 공시와 기업설명회에서 해저케이블 사업 경쟁력을 반복적으로 부각해 왔고, 해상 풍력과 초고압 직류송전(HVDC) 프로젝트를 '차세대 먹거리'로 제시했습니다.


2022년 호반프라퍼티가 지분을 인수해 사실상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삼성금거래소 역시 실적이 가파르게 뛰었습니다. 2024년 한 해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100억 원을 훌쩍 넘기며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기록한 데 이어, 2025년에는 연간 영업이익 500억 원 이상이 점쳐질 정도로 '효자 계열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금 가격 급등과 '금테크' 열풍이 계열사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고, 호반그룹은 이를 기반으로 그룹 차원의 지원을 강화해 왔습니다.


사진제공=호반그룹


이번 인사에서 삼성금거래소에서는 최은주 대표이사가 부사장으로, 이영만 영업본부장이 전무로 각각 승진했습니다. 최 부사장은 포스코그룹 최초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이라는 커리어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B2C 사업 경쟁력을 키워 사업 기반을 넓힌 공로를 인정받았습니다. '포스코 첫 여성임원'이라는 이력과 함께, 호반그룹 내 여성 리더십의 상징으로 전면에 세워졌습니다.


대한전선에서는 1997년 입사해 미주본부장을 맡아온 이춘원 전무가 이번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하고, 향후 해저사업부문장을 맡게 됐습니다. 미국 시장 확대와 글로벌 수주 확대에 기여한 점이 반영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대한전선이 해저케이블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은 만큼, 이 전무의 역할은 해외 사업과 직결된 포지션입니다.


이처럼 인사 명단만 놓고 보면, 호반그룹은 2세와 함께 여성 임원, 글로벌 경험을 쌓은 직능형 리더를 나란히 띄워 올렸습니다. 그룹 설명대로만 보면 '성과주의 인사'와 '다양한 리더십'이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실제로 대한전선과 삼성금거래소는 수치상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내고 있고, 해당 조직을 책임져 온 전문경영인들도 함께 승진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장의 시선은 결국 '호반 권력의 축이 어디로 쏠리느냐'에 더 민감합니다. 대한전선, 삼성금거래소, 향후 해저케이블과 신사업까지, 그룹의 핵심 성장축으로 꼽히는 사업 대부분이 김민성 부사장이 관여해 온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비상장 중견 건설그룹이 M&A로 키운 '알짜' 계열사의 실적을, 오너 2세의 경영 능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는 구도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인사는 호반이 사실상 2세 체제를 본격화하는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큽니다. 오너 일가 지분이 집중된 비상장 지주·건설사를 정점으로, 대한전선·금거래소·레저·유통 등으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그룹 전략과 투자 결정을 총괄할 자리에 2세를 앉히는 방식입니다. 


뉴스1


전면에는 여성 리더십과 글로벌 인재 '스토리'를 내세우고 실제 의사결정 권력의 중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부를 여지가 충분훈 상황입니다. 


호반건설 측은 이번 인사와 관련해 "명확한 성과주의 인사를 통해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면서도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인재들에게 리더십을 부여해 핵심 전략사업을 더욱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며 "신사업을 포함한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와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도 주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시장이 주목하는 대목은 하나입니다. 김민성 부사장이 앞으로 내놓을 의사결정과 성과가 '혈연'이 아닌 '실적과 지배구조'로 입증될 수 있느냐입니다. 


대한전선 해저케이블, 삼성금거래소 이후의 다음 먹거리, 그리고 비상장 구조 속에서의 투명성 강화와 책임 경영 체계 구축까지, 30대 2세 부사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적지 않습니다. ESG가 기업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요즘, 이 과제는 더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여성 리더십과 글로벌 인재를 앞세운 화려한 인사 포장 뒤에서, 호반의 권력 지도가 어떻게 바뀌는지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검증의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