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0월이면 데뷔 30년을 맞는 발레리나 김주원이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고 있습니다.
한국 발레계 대표 주자로 활동해온 그는 현재 대한민국 발레축제 대표 겸 예술감독, 부산 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예술감독, 서울사이버대학교 부학장으로 활동하며 '무대 위에서 무대 아래로' 내려와 후배들을 위한 길을 닦고 있습니다.
"100% 노력형 천재...대한민국 최고령 발레리나"
"최고보다는 최선"이란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김주원 감독은 그가 이룬 업적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소위 '팬심'에 호응하기 위해서라도 '최고'라고 자부하는 것들 5개만 꼽아달라는 질문에 김 감독은 간신히 4가지 장점을 꼽았는데요.
첫번째로 "노력도 재능이라면, 노력에 관해서는 천재가 맞는 것 같다"고 수줍게 답했습니다.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할 수 있어요. 특히 눈 앞에 보이는 것에 엄청 최선을 다할 수 있어서 200%, 300% 던져보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누구보다 열심히 '순간'을 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 "두번째로, 그렇게 최선을 다해 노력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서는 '쿨'할 수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직 멀었구나'하고 덤덤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원인을 분석해 '다음에는 이렇게 노력을 해봐야지' 하고 생각하지, 결과에 좌절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세번째로 김 감독은 '감정 표현을 하는 것에 진정성을 담는 것'에 자신 있다고 답했는데요. 애초에 거짓말을 못하고 진심이어야만 표현이 나오는 성격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 이러한 성격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파트너를 만나면 어려움을 겪고 다른 일을 할 때도 마음이 잘 안 맞는 사람과 일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기도, 상처도 받는다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네번째로 "대한민국 최고령 발레리나!"라고 답한 김 감독은 "클래식 발레는 아니어도 작년까지도 무대에 설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답했습니다.
'최고의 지젤', '최고의 폴드브라' 등의 평가도 너무 많지 않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딱 자르기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이제는 다른 무용수들의 '최고'인 춤을 보면서 느끼는 행복과 감동이 있다"며 발레리나 김주원보다 예술감독으로의 김주원의 삶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역에서 감독으로, 시선의 변화가 가져온 새로운 깨달음
"사실 많이 바뀐 것은, 저는 항상 무대 위에서 그 시선으로 삶을 살아오다가 이제 무대 아래로 내려온 거죠."
발레리나에서 본격 예술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가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시선의 변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오롯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만 몰두하면서 살아오던 제가 이제는 무대를 시작하기 위한 기획 단계부터 막이 내려가고 그 뒷정리까지를 다 책임져야 하는 예술 감독의 삶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됐다"고 설명했습니다.
MZ세대 무용수들과의 만남 "오히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현역 시절 발레단에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등 치열하게 노력한 것으로 유명한 김주원 감독. 혹여나 후배 무용수들을 보며 더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나 아쉬움은 없는지 묻자 "전혀요. 아쉬움보다 오히려 제가 배우고 영감을 많이 얻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 무용가들보면 정말 깜짝 놀라요. 어떻게 저렇게 세련되고 쿨한 마인드를 가지고 저렇게 춤을 출 수 있을까요? 나는 뭘 그렇게 촌스럽게 치열하고 질퍽거렸나 하고요. 저는 건강하게 춤을 대하고 예술적 삶을 사는 후배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김 감독은 "한국인들은 (세대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다들 열심히 한다"며 "발레하는 후배들도 저희 때보다 체격, 체력적으로 또 예술적으로도 훌륭해졌고 너무나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애정을 나타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하는 후배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행복하게 춤췄으면 좋겠다"는 진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 없이 좀 더 행복하게 춤출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겪었던 절망적이고 힘들고 치열하게, '맨땅에 헤딩하는' 그런 경험 없이 좀 더 현명하고 행복하게 춤출 수 있게 제가 같이 달려야 되고, 그 길을 닦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작 작품을 통한 한국 발레의 새로운 도전
김주원 감독은 그가 사랑한 클래식 작품을 발레리나로서 하나씩 떠나보내며 아쉬움도 있었지만, 감독으로 만나는 작품들로 새로운 행복과 열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훌륭한 창작 작품이 정말 많다"면서도 두 가지 작품을 소개했는데요. 하나는 부산 오페라하우스 발레단에서 만든 '샤이닝 웨이브'입니다.
그에 따르면, '샤이닝 웨이브' 작품은 고래와 소녀와 바다의 정령들 그리고 고래사냥꾼 이야기로, 정영 시인의 8개의 연시로 이루어졌으며 재즈신에서 유명한 손성제 작곡가가 음악 감독을 맡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고래가 떠나기 전 소녀와의 듀엣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보는 관객들은 다 눈물을 흘린다"고 귀띔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발레축제에서 올린 유회웅 안무가의 '라이프 오브 발레리노'도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았습니다. 그는 "발레리노들에 대한 이야기로, 백스테이지에 대한 얘기도 있고 삶에 대한 얘기도 있고, 정말 매 순간 한 살 한 살의 꿈을 담아서 걷는 무용수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전석 매진의 인기를 자랑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진 안무가 발굴과 한국 발레의 미래
대한민국 발레축제 대표인 김주원 감독은 한국 발레의 현재 상황에 대해 "무용수들로만 보면 이제 훌륭한 무용수들이 많아졌고, 육성해서 외국 유명 발레단으로 내보낼 정도의 위상까지 왔다"며, "앞으로의 과제는 정말 좋은 콘텐츠들과 안무가를 양성해야 하는 시기"라고 진단했습니다.
대한민국 발레축제에서는 15년 동안 소극장에서 공모작을 통해 안무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해오고 있습니다.
그는 "매년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6편의 신작들이 올라갑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발굴되는 신진 안무가들의 공연도 관심을 갖고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습니다.
(하단 기사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