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4일(일)

일제가 조선 흡수하려 '한일 결혼' 장려하자 '조선 남자'와 결혼하려 몰려든 일본 여성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영화 '항거'


[인사이트] 조세진 기자 =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던 일제강점기는 우리 민족에게는 뼈아픈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중 당시 일제가 장려한 결혼 정책에 얽힌 의외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가.


'내선 결혼'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추진하였던 동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의 혼인 관계를 의미한다.


내선 결혼은 3·1 운동 이후인 19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독일에서 발굴한 일제 강점기 단편 '한국의 결혼식' 캡처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민족문제연구소


조선총독부는 일본 동화를 위한 결혼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1920년 4월 조선의 왕세자 이은과 일본의 황족 이방자의 결혼을 추진하였고, 1920년 4월 28일 정식으로 혼례식을 가졌다.


이를 계기로 1920년 6월 7일 내선인통혼법안을 발포하였다.


내선 결혼은 1930년대 전시 체제기가 형성되면서 더 강화되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총독 미나미 지로가 부임하면서 식민 정책의 핵심은 내선일체가 되었는데, 그 실천 방안의 하나로 내선 결혼을 강조하였다.


1926년 동아일보 기사 / 온라인 커뮤니티


하지만 조선총독부는 몇 년 뒤의 통계를 보고 당황하기 시작했다. 생각 외의 조합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조선인 아내와 일본인 남편의 조합을 예상했으나, 현실은 조선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조합이 수두룩했다.


조선이 일본에 동화되라며 내세운 결혼 정책이었으나 오히려 역동화 현상이 일어난 격인 셈이었다.


한편 이 같은 현상은 세계 식민지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로 지금도 그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따로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