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우리나라 역사상 장모와 새어머니까지 '강간'하며 역대 최악의 왕으로 꼽히는 왕이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뚜렷한 업적이 없는 왕에게 시호로 '혜(惠)'자를 붙여줬고, 이 때문에 '혜'자가 들어간 왕들은 행실이 좋은 않은 경우가 많다.
그 중 한 인물이 바로 고려의 28대 왕인 '충혜왕'이다.
충혜왕 시절 궁에는 100여 명이 넘는 궁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역사 속 그는 주변의 시녀들은 물론 신하의 아내, 장모, 새어머니 등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강간'하는 등 고려 시대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충혜왕이 자신의 새어머니인 경화공주를 범했다는 사실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다.
충혜왕의 아버지인 충숙왕의 부인이었던 경화공주는 원나라에서 온 황족이었다.
경화공주는 1339년 충혜왕이 왕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다. 충혜왕이 왕위에 오른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지만 이 자리는 곧 경화공주에게 '지옥'이 되고 만다.
연회가 끝난 후 아들 충혜왕에게 '강간'을 당했기 때문.
충혜왕은 경화공주가 몸무림치자 신하들을 시켜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그녀를 범했다. 원나라 황실의 공주이자 새어머니였던 경화공주는 그렇게 처참히 짓밟혔다.
충혜왕의 폭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의 장모, 신하의 부인, 백성 등 신분의 고하를 따지지 않고 여성들을 성폭행했다.
충혜왕 주변에 머물던 악소배(폭력배)들도 왕을 사칭하며 부녀자들을 간음했다.
이에 백성과 신하들의 원성을 날이 갈수록 커졌고, 결국 충혜왕의 폭정을 참지 못한 신하들이 반란을 일으켜 충혜왕을 구타하고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저지하는 신하는 없었다. 이후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까지 압송된 충혜왕은 게양현(현재 중국 광동성 조주)로 유배됐다. 고려에서 2만여 리 떨어진 곳이었다.
충혜왕은 어떤 수행원도 없이 혼자 수레를 끌고 유배지로 향하다 유배길 중간에서 죽고 말았다.
이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그는 역사 속에서 '주색을 좋아했고, 황음무도했던 왕'으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