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30일(목)

서호정엔 300억 주식, 서민정엔 순익 넘긴 배당... 아모레 서경배家 승계 재원 따져보니

아모레퍼시픽의 승계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장기 휴직 중인 장녀 서민정 씨가 고배당과 지분 정리를 통해 막대한 승계 자금을 비축하는 사이, 차녀 서호정 씨는 부친의 전격적인 지분 증여를 발판 삼아 후계 구도의 중심부로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지난달 27일 차녀 서호정 씨에게 보통주 19만 주를 증여했다. 이는 아모레퍼시픽 발행주식 총수의 0.27%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증여일 종가 기준 약 300억 원 규모다. 이로써 서 회장의 아모레퍼시픽 지분율은 9.02%(622만8072주)에서 8.74%(603만8072주)로 0.28%p 낮아졌다.


이미 지주사 지분율에서 언니와 0.03%p 차이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서호정 씨가 이번에는 그룹의 핵심 사업회사인 아모레퍼시픽 지분까지 직접 수혈받으며 승계 서열의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좌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장녀 서민정 씨, (우)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차녀 서호정 씨 / 아모레퍼시픽


흥미로운 지점은 이 '승계 레이스'를 지탱하는 자금의 성격이다. 차녀가 상장사의 핵심 지분을 직접 수혈받으며 존재감을 키우는 사이, 경영 일선을 떠나 있는 장녀에게는 비상장 계열사의 '고배당'과 '우회적 자산 유동화'라는 현금 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호정 씨는 지난해 그룹 계열사 오설록에 입사해 경영 수업에 첫발을 뗐다. 현재 제품 개발(PD·Product Development)팀 사원으로 근무하며 실무 역량을 쌓고 있는 그의 행보는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챙기는 모양새다. 그는 증여받은 보통주 중 약 100억 원어치를 곧장 매도했는데, 이는 막대한 증여세를 납부하기 위한 현금화 과정으로 풀이된다.


주목할 부분은 그가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는 팔면서도, 2029년 보통주로 전환될 171만 주의 전환우선주는 고스란히 손에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의 세금 부담은 털어내면서도 3년 뒤 찾아올 '지분 대역전'의 발판은 철저히 사수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이 엿보인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 뉴스1


반면 장녀 서민정 씨는 경영 현장과 거리를 두는 대신 재무적 실속을 채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3년부터 시작된 휴직이 2년을 넘기며 경영 복귀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그의 재무적 영향력은 오히려 확대되는 양상이다.


비상장 계열사인 이니스프리는 지난 한 해 동안 300억 원에 달하는 배당을 결정했다. 전년도 배당금이 45억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6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특히 이니스프리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159억 원에 그쳤다는 사실은 이 배당의 성격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벌어들인 돈보다 주주에게 돌려준 돈이 두 배 가까이 많은 이 배당의 수혜는 지분 8.68%를 보유한 서민정 씨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서민정 씨의 이러한 '현금 중심' 행보는 비단 배당에만 그치지 않는다. 승계 핵심 자산으로 꼽히던 계열사 주식을 정리하며 자금 확보와 지배구조 개편을 동시에 진행해온 점도 눈에 띈다. 서민정 씨는 2023년 6월 보유 중이던 이니스프리 지분 9.5%(2만 3,222주)를 서경배과학재단에 전격 출연(기부)했다.


이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재단은 해당 주식을 한 달여 만인 7월 27일, 이니스프리에 자사주 형태로 매각하며 약 557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비상장사인 이니스프리가 이례적으로 거액의 자사주를 사들여 재단에 현금을 쥐여준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서민정 씨가 직접적인 증여세 부담을 덜면서 승계 구도를 단순화하는 '재무적 우회로'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 측은 "순수한 목적의 기부이며, 개인이 취득하는 이득이나 절세 의도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아모레퍼시픽 용산 사옥 / 인사이트


결국 장녀는 재단 출연과 고배당을 통해 재무적 운신의 폭을 넓히는 방식을, 차녀는 현장에서 실무를 익히며 직접 지분을 수혈받는 방식을 택하며 서로 다른 승계 방정식을 풀어나가고 있다.


두 자매의 엇갈린 행보는 주주들 사이에서 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경영 능력 검증이나 책임 경영보다 오너 일가의 승계 재원 마련이 기업 의사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놓여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니스프리가 어떤 내부 기준으로 순이익을 훌쩍 뛰어넘는 배당을 강행했는지, 또한 서호정 씨가 보통주를 매도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한 우선주 너머의 지배구조 설계도는 무엇인지 현재의 공시 정보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려가는 승계의 '돈길'은 선명해졌으나, 그 길을 걷는 방식의 투명성은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다. 상장사 주식 증여와 비상장 계열사 배당이 각각 두 딸의 세금 재원과 현금 흐름에 맞물린 구조다. 이니스프리의 배당 확대 기준, 서호정 씨의 보통주 매도와 전환우선주 보유 배경, 2029년 보통주 전환 이후 지분 구조 변화는 공시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그 답은 2029년 전환우선주가 보통주로 바뀌는 순간에야 비로소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