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고령층 자살 예방 정책이 변화하는 인구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기존 정책이 주로 저학력 독거 남성에 집중돼 있지만, 향후에는 고학력 비혼·미혼 남성이 새로운 고위험군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 정책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2일(현지시간) 이수지 독일 막스플랑크 인구학연구소 박사와 영국·스페인 공동 연구팀은 한국의 사망 등록부와 인구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1930~1950년대 출생 코호트의 고령층 자살 패턴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BMJ Public Health에 게재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혼이나 이혼한 고령층의 자살률은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보였으나, 이러한 감소 현상은 고학력층에서만 뚜렷하게 나타났다. 저학력 미혼·이혼 남성의 경우 여전히 높은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1961~1985년 출생자들이 60~69세에 도달하는 시기를 가정한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향후 대학 이상 학력의 비혼 고령 남성 자살 사망자 수가 저학력 동년배를 상회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 특징은 자살률 자체보다는 자살 사망자의 실제 규모가 어떤 집단으로 이동하는지를 추적했다는 점이다. 과거 높은 결혼율과 저학력 인구 비중이 컸던 시기와 달리, 현재는 고학력·1인 가구·비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고령층 위험군의 인구학적 특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황순찬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는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K)를 통해 "고학력 집단 인구 급증으로 인해 이 집단 내 자살 사망자 수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적 변화를 파악한 것은 의미 있는 발견"이라면서도 "교육 수준과 혼인 상태만으로 미래를 확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우며, 사회적 자본과 복지제도 변화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향후 자살 예방 정책이 기존의 저소득·저학력 고위험군을 넘어 고학력 고령 1인 가구의 사회적 고립과 복지 사각지대까지 아우르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함을 보여준다. 높은 교육 수준에도 불구하고 가족 해체, 사회참여 축소, 경제적 불안정, 건강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 위험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고령기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아닌, 청년·중장년기부터 축적된 비혼, 가족 해체, 사회적 연결 약화가 노년기에 집약적으로 표출되는 '문턱 효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연구와 정책 개발에서는 혼인 상태·학력 등 인구학적 변수와 함께 사회참여, 건강 상태, 삶의 질, 지역사회 네트워크 등 비인구학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고령층 자살 예방의 초점을 특정 취약계층에만 맞추기보다는 변화하는 인구 구조에 발맞춰 새로운 위험군을 선제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정책적 시사점을 제공한다. 가족 형태 변화와 1인 가구 증가 추세를 반영한 예방 정책의 정교한 재구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