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라틴계 민권 운동의 아이콘으로 추앙받아온 세자르 차베스가 생전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충격적인 폭로가 나오면서 미국 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다. 차베스 사망 33년 만에 터진 이번 논란으로 각 주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그와의 거리두기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차베스가 생전 다수의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과 성추행을 자행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피해자들과 차베스의 측근, 친족, 동료 등 60명 이상을 인터뷰하고 각종 문서와 이메일, 음성 자료를 종합 분석한 결과라고 밝혔다.
특히 피해자 중 일부는 사건 당시 10대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1970년대부터 차베스로부터 반복적인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극심한 고통으로 자살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뉴욕타임스는 이와 같은 피해자가 수십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뉴욕타임스는 "많은 여성들이 침묵한 이유는 수치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라틴계 시민권 운동의 상징인 차베스의 명성을 훼손할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차베스가 창립한 전미농장노동자연합(UFW) 지도부가 그의 성폭력 의혹을 알고 있었음에도 대중적 이미지 보호를 위해 피해 여성들에게 침묵을 강요했다"고 지적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차베스와 함께 UFW를 공동 창립한 돌로레스 후에르타(95)도 피해자였다는 사실이다.
후에르타는 인터뷰에서 1960년대 차베스로부터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지만, 당시 남성 중심적인 노조 분위기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별도 성명을 통해 "지난 60년간 진실을 공개하면 평생 헌신해온 농장 노동자 운동에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해 비밀을 지켜왔다"고 고백했다.
차베스는 1960년대부터 미국 농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에 앞장선 인물로 평가받아왔다.
그의 노력으로 라틴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의 생일인 3월 31일은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등 최소 6개 주에서 기념일이나 공휴일로 지정됐으며, 전국 곳곳에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광장, 학교, 기념물이 세워져 있다.
1994년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2021년 대통령 집무실에 차베스의 청동 흉상을 전시하기도 했다. 차베스는 1993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폭력 의혹이 공개된 후 시민사회와 각 주 정부의 반응은 신속했다. UFW는 "충격적이며 변명할 수 없는 일"이라는 성명을 발표하며 이달 예정된 모든 차베스 관련 기념행사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케이티 홉스 애리조나 주지사는 "더 이상 차베스 기념일을 공휴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주 의회와 협력해 관련 공휴일을 주법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민주당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우리 모두가 몰랐던 사실"이라며 '세자르 차베스의 날' 명칭 변경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