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매일유업 분유 공장에서는 매년 정해진 시기마다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됩니다.
평소라면 분주하게 돌아가야 할 생산 라인이 멈추고, 현장 직원들은 완제품 대신 세척 도구를 들고 설비 곳곳을 점검합니다.
이들이 꼬박 하루를 닦고, 또 닦으며 모든 것을 비워내는 이유는 단 하나, '선천성대사 질환' 환아들을 위한 특수분유 생산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천성대사이상 질환'은 체내에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아미노산 등 필수 영양소를 분해하는 특정 효소가 부족하거나 만들어지지 않는 유전대사 질환입니다.
모유는 물론 고기와 빵, 쌀밥 등 일반적인 음식을 자유롭게 섭취하기 어렵고 평생 특수분유를 먹으며 엄격한 식이관리를 해야 합니다.
이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분해하지 못하는 대사산물이 축적돼 운동발달장애, 성장장애, 뇌세포 손상 등이 발생하거나 심한 경우 사망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5만 명 중 1명에게서 특수분유를 필요로 하는 선천성대사이상 질환이 발생합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25만 8,242명입니다. 1년에 태어나는 5명의 아이를 위해 공장을 멈추는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제조 공장에서 '라인을 세운다'는 것은 경영상의 막대한 손실을 의미합니다.
매일유업이 통상 1년에 두 번, 일반 분유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특수분유 생산 체제로 전환할 때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단순히 숫자로 환산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수억 원에 이를 수 있는 매출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물론, 거대한 설비를 멈추고 다시 예열하는 데 드는 막대한 에너지 비용도 고스란히 기업의 몫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품을 만드는 시간보다 더 길고 치열하게 전개되는 과정은 제품의 배합이 아니라 바로 '24시간의 준비' 공정입니다.
약 16~24시간가량 CIP 세척(설비를 분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부를 세척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라인 충전과 클리닝 작업을 진행합니다.
12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 제품별로 세척·충전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약 일주일~열흘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이 1,440분의 공백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을 앓는 아이들에게 일반 분유 성분은 아주 미세한 양이라도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정 아미노산을 분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0.1%의 혼입은 곧 생명의 위협과 직결됩니다. 이 때문에 매일유업의 세척 작업은 단순한 위생 관리를 넘어 수행(修行)에 가까운 정밀함을 요구합니다.
기존 라인에 남아있을지 모를 단 하나의 가루 입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성분까지 완벽히 제거하기 위해 전 공정을 분해하고 고온 스팀 세척과 건식 건조를 반복합니다.
이러한 '비효율의 극치'는 역설적으로 매일유업이라는 브랜드가 가진 진정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입니다.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어야 한다'는 故 김복용 선대 회장의 기업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최근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외치며 거창한 담론을 늘어놓지만, 기업의 진짜 얼굴은 화려한 보고서가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공장의 멈춘 라인 위에서 결정됩니다.
수익성을 계산하는 차가운 수치보다 환아 한 명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이들의 고집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쉽게 생략되곤 하는 '기다림'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무모해 보이는 공정은 벌써 2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매출 전표에 기록되지 않는 이 24시간은 기업 경영의 관점에서는 명백한 손실이지만, 환아의 부모들에게는 아이가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입니다.
모두가 '더 빨리, 더 많이'를 외치며 속도 경쟁에 열을 올리는 시대에 매일유업은 스스로 멈춰 서는 법을 택했습니다.
공장이 고요해지는 그 24시간 동안, 매일유업의 생산 라인은 비로소 가장 뜨겁게 가동됩니다. 기계는 멈춰있을지언정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살아갈 생명의 시간을 만드는 가장 숭고한 공정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