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10일(화)

'현대차vsHD현대'의 로봇 대결... 범현대가 3세 정의선과 정기선의 피할 수 없는 승부

범(汎)현대가 출신의 두 젊은 리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사촌지간으로, 재계에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2024년 CES 현장에서 서로의 부스를 찾는 모습이 화제가 되며 현대가 계열 분리 이후 다시 손을 맞잡는 장면이 연출됐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국 제조업의 향후 수십 년 경쟁 구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 경쟁이 조용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핵심 무대는 로봇과 인공지능(AI)입니다. 


전통적으로 자동차와 중공업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성장해 온 현대자동차그룹과 HD현대는 각자의 산업적 DNA를 바탕으로 로보틱스를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5일(현지시간) CES 2022(미국 라스베이거스) 당시 정기선(오른쪽) 현대중공업지주 대표가 현대중공업그룹 부스를 찾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자율해상운항 시스템인 아비커스를 설명하고 있다 / HD현대


방향은 다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과 이동, 산업 현장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겠다는 목표만큼은 닮아 있습니다. 


'바퀴 달린 로봇'에서 일상 파트너로... 정의선의 모빌리티 확장론


정의선 회장이 그려온 로봇 전략은 '모빌리티의 재정의'로 요약됩니다. 그는 자동차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센서·소프트웨어·자율주행 기술이 결합된 ‘바퀴 달린 로봇’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차량에서 축적한 인공지능·인지·제어 기술을 휴머노이드와 서비스 로봇에 적용하고, 다시 로봇에서 발전한 균형 제어와 센싱 기술을 자동차로 환류시키는 순환 구조가 그의 구상입니다. 


이 전략의 중심에는 미국 로봇 전문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있습니다. 


YouTube 'Hyundai Motor Group'


현대차그룹은 2021년 6월 이 회사를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물류 로봇 '스트레치', 사족보행 로봇 '스팟', 휴머노이드 플랫폼 '아틀라스'를 고도화해 왔습니다. 


그룹 내부에서도 로봇 개발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이 선보인 모빌리티 로봇 플랫폼 '모베드(MobED)'는 다양한 상부 모듈을 결합해 물류·배송부터 개인 이동 수단까지 확장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으며 상반기 출시를 예고한 상황입니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플랫폼 구축에 무게를 둔 접근입니다. 로봇을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와 연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키우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정 회장이 반복해 강조해 온 '휴머니티를 위한 진보(Progress for Humanity)'도 이 전략과 맞닿아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 뉴스1


고령화 사회에서 이동 약자를 돕는 웨어러블 로봇, 실내외를 오가며 생활을 보조하는 서비스 로봇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출발한 기업이 생활 밀착형 기술 기업으로 변모하려는 상징적 시도입니다. 


그의 최종 그림은 집과 도로, 빌딩과 물류 거점을 하나의 지능형 이동 네트워크로 묶는 것입니다. 


산업 현장의 무인화... 정기선의 '거대 자동화' 비전


정기선 회장이 이끄는 HD현대의 로봇 전략은 결이 다릅니다.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 현장, 수십 톤의 장비가 움직이는 건설 현장, 수천억 원대 선박이 오가는 바다 위가 그의 주 무대입니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이 현장을 통제하는 '산업 무인화'가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 


HD현대는 자율 굴착기와 원격 제어 건설기계, 스마트 조선소, 자율운항 선박을 그룹 차원의 핵심 미래 사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HD현대의 AI 기반 해양 데이터 솔루션 ‘오션와이즈’ 이미지 / HD현대


건설 장비에 카메라와 라이다(LiDAR), AI를 결합해 위험 지역을 무인으로 작업하게 하고, 선박에는 항로를 스스로 판단하는 항해 시스템을 적용하는 식입니다. 


인력 부족과 안전 문제, 강화되는 탄소 규제라는 구조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한 해법으로도 읽힙니다. 


이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 곳이 산업용 로봇 제조사 HD현대로보틱스입니다. 이 회사는 조선소와 공장 자동화를 겨냥한 용접·조립 로봇을 공급해 왔습니다.


HD현대는 여기에 조선·건설 현장에서 축적한 방대한 운용 데이터를 결합해 현장 전체를 AI로 관리하는 '스마트 사이트' 개념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향후 고위험 작업부터 단계적으로 로봇이 대체하고, 인간은 감독·설계·통제에 집중하는 구조로 산업 현장이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입니다. 


서로 다른 길, 같은 목적... 로봇 플랫폼 경쟁


정기선 HD현대 회장 / HD현대


두 그룹의 전략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현대차그룹이 개인의 이동과 생활 공간을 겨냥한 소프트웨어 중심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려 한다면, HD현대는 국가 기간 산업의 생산성과 안전을 끌어올리는 하드웨어·플랫폼 경쟁력에 방점을 찍습니다.


한쪽은 '일상의 동반자'를, 다른 한쪽은 '산업의 자동화 관리자'를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재계에서는 이를 각자의 영역에서 로봇 플랫폼 주도권을 선점하려는 경쟁으로 해석합니다. 


누가 먼저 대규모 현장에서 검증된 운영 체계를 확보하고, 이를 표준화된 솔루션으로 묶어 글로벌 시장에 내놓느냐가 승부처가 될 전망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된 이미지


단순히 로봇을 만드는 제조사를 넘어, 로봇을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모델까지 장악하는 기업이 미래 패권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의선과 정기선, 두 리더의 행보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전기차 이후의 시대에 한국의 대표 제조기업들은 무엇으로 성장할 것인가. 모빌리티와 중공업이라는 서로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된 두 전략은, AI와 로보틱스를 축으로 한 '하이테크 제조 기업'이라는 지점에서 만납니다.


형이 여는 일상 속 로봇의 세계와, 아우가 구축하려는 산업 현장의 무인화 플랫폼.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한국 로봇 산업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두 그룹의 경쟁은 이제 막 본궤도에 올랐습니다. 


아직은 실증과 초기 상용화 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투자와 기술 축적이 쌓일수록 이 조용한 경쟁은 한국 제조업의 미래 방향을 가늠하는 주요 시험대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