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구매를 고민하던 34살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현대자동차의 구독서비스 '현대 셀렉션'에 가입했다.
그가 선택한 구독 차량은 현대차의 전기 세단 '아이오닉6'다.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초기 비용 없이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보조금을 받더라도 3000만원대에 이르는 아이오닉6를 가입비와 선납금 없이 월 구독료 99만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구독료에는 자동차세, 보험료, 정비 비용이 포함돼 추가 비용이 들지 않고, 원할 때 구독을 해지할 수 있다.
A씨는 "매달 고정 비용을 내고 넷플릭스를 보듯, 자동차도 소유가 아닌 이용의 개념으로 접근하니 훨씬 합리적이었다"고 밝혔다.
자동차 구독서비스는 말 그대로 넷플릭스, 티빙 등 OTT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월 구독료를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급속도로 확산된 '구독 경제'(Subscription Economy)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구독 경제란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를 일정 기간 동안 이용하는 대가로 정기적인 비용을 지불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미디어 콘텐츠, 소프트웨어, 식품, 패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구독 경제 시장이 커질 수 있었던 건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 이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초기 비용 부담 없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고,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구독 경제는 이제 자동차 산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를 구매하거나 장기렌트·리스할 경우 20~30%의 선수금을 내야 하지만, 구독서비스는 가입비나 선납금 등 초기비용을 들이지 않고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선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현대 제네시스 셀렉션'과 '기아 플렉스'가 대표적이다.
이용 가격은 차종과 계약 기간에 따라 다양하다. 쏘나타 기준 1개월 이용 시 월 79만원, 아이오닉6는 99만원부터 시작한다. 일 단위로는 최저 하루 9만 9000원부터 이용 가능하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다양한 자동차 구독서비스가 시행되고 있다. 자동차 구독은 볼보, BMW, 포르쉐 등 완성차 기업과 타사 서비스 공급자(Third-Party Service Provider)로 구분된다.
완성차 기업에서 제공하는 차량 구독 서비스는 렌터카와 달리 편의 옵션 사양이 많이 적용된 상위 트림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비싼 구독료가 단점으로 꼽히지만, 자사의 제품 홍보 등을 위해서 사업을 유지하는 중이다. 볼보의 '케어 바이 볼보'나 포르쉐의 '포르쉐 드라이브' 서비스는 실제 사업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포르쉐 드라이브의 경우 1500마일 주행거리 한도가 있는 911을 구독했을 때 3000달러(한화 약 400만원)에 조금 못 미치는 비용이 든다. 다소 비싼 편이지만 수요는 꾸준히 있는 편이다.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허츠(Hertz) 마이카, 식스트플러스(Sixt+), 바로우(Borrow) 등 기존의 리스·렌트 기업들이 차량 구독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 서비스의 특징인 제조사의 구독 서비스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브랜드의 차량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대신 구독 기간이 3, 6, 9개월도 다소 길고 제한적 마일리지와 부족한 옵션 사양들이 단점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는 쏘카가 '쏘카플랜'을 운영하고 있다. 쏘카플랜은 1개월 단위로 최대 36개월까지 이용 계획에 맞춰 대여 기간과 차종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는 서비스로 지난해 12월 기준 누적 계약 5만 건을 돌파했다.
'더 트라이브'는 프리미엄 수입차, 슈퍼카 등의 구독서비스를 제공한다. 1년 단위의 은 계약 기관과 6개월 사용 시 중도 해지 수수료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자동차 구독서비스는 차량 소유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달라지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구매 직후부터 가치가 하락하는 대표적인 품목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장기적으로 소유하지 않은 것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주요 국가들의 대도시에서는 차량 소유에 따른 세금, 정비 등 부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소모가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뉴욕과 LA 등 대도시에서는 주차 공간 부족으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편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가 원할 때 원하는 모델로 차량 확보가 쉽게 가능하고, 차량 관리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구독서비스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변화하는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해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제조 및 서비스 업체'로 전환을 지향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구독서비스를 확대하는 중이다.
아직까지 국내의 구독서비스 이용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구글 앱스토어에 따르면, 현대 셀렉션은 약 5만 건, 기아 플렉스는 약 1만 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카셰어링 서비스인 쏘카(500만 건)나 G카(그린카, 100만 건)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제한적인 서비스 차량과 지역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차를 빌려 타는 것이 아닌 '소유'에 익숙한 소비자의 성향도 자동차 구독서비스 이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다.
이러한 도전 과제에도 불구하고, 주요 자동차 기업들은 구독 서비스를 유지하거나 더욱 확대하는 중이다. 자동차 구독서비스가 단순한 대여 서비스를 넘어 자동차 소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 구독서비스는 향후 기업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통적인 자동차 판매만으로는 성장 한계에 직면한 자동차 기업들이 구독서비스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할 수 있다.
소비자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구독서비스를 통해 운전자의 운행 패턴, 차량 사용 습관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차량 및 서비스 개발에 활용된다.
소비자가 다른 브랜드로 전환하기 어렵게 만드는 '락인 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구독서비스를 통해 특정 브랜드에 익숙해진 소비자는 다른 브랜드로 전환하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형성된 소비자의 충성도는 향후 자동차 구매에도 영향을 끼친다.
글로벌 마켓 인사이트(GMI)에 따르면 글로벌 자동차 구독서비스 시장 규모는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3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또 MZ세대들이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하면서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자동차 구독서비스 시장의 성장세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은 100년 넘게 '소유'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지만, 이제 '구독'이라는 새로운 소비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영화 산업을 변화시켰듯이, 자동차 구독서비스는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