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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들이 무령왕릉 1500년 동안 지킨 '돌덩이' 발견하고 소름돋은 이유

무령왕릉을 막고 있던 벽돌을 빼내고 사람들이 무덤 안에 들어갔을 때 입구 쪽을 노려보는 자세로 서 있는 돌멩이와 처음 마주했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공사장 인부가 삽질하다 발견한 벽돌...동아시아 최고의 발견 중 하나


[인사이트] 함철민 기자 = 1971년 7월, 한국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은 소식이 전해졌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백제 왕실의 무덤으로 알려진 송산리 고분군에서 도굴이나 붕괴로 인한 피해 없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무덤이 발견된 것. 


무덤의 문을 열자 입구 앞에는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을 한 아주 작은 돌덩이 하나가 놓였다. 이 돌덩이가 1500년 가까이 무덤을 지킨 셈이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무덤은 장마철 배수로 공사를 하던 인부들에 의해 발견됐다. 삽질을 하던 한 인부가 느닷없이 뭔가 걸리는 느낌을 받아 확인해보니 벽돌이 있었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이 주변의 흙을 파기 시작했다. 이윽고 벽돌로 만든 아치 모양의 지하 무덤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덤을 막고 있던 벽돌을 빼내고 사람들이 무덤 안에 들어갔을 때, 작은 돌 하나가 입구를 막아섰다. 돌은 높이 31cm, 길이 50cm로 동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인사이트국립공주박물관


1500년 가까이 왕릉을 지킨 진묘수


입구 쪽을 노려보는 자세로 서 있는 이 돌은 둥근 눈과 타원형의 귀를 하고 있다. 통통하고 둥근 몸체에는 갈기로 추정되는 장식이 있고, 엉덩이에는 돼지 꼬리가 조각됐다. 


다리는 짧고 굵은데 앞다리에는 불꽃모양의 날개가 새겨져 있었다. 


이 돌덩이는 무덤을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지키기 위한 '진묘수'였다. 고고학자들은 진묘수 양옆에 놓인 묘비석을 보고 무덤의 주인이 백제 제25대 임금 무령왕과 그 왕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인사이트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신비롭게도 무덤에서는 하얀 김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진묘수의 빨간 입술이 색이 바래 날아갔다. 


진묘수가 자신의 역할을 다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뼈아픈 진실이 숨겨져 있다. 


오랜 시간 땅에 묻혀 있던 문화재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공기와 햇빛에 의해 원래의 형태와 색을 잃는 경우가 있어 발굴에 있어 조심해야 한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도굴보다 처참했던 발굴


그러나 당시에는 이러한 발굴 과정이 생략됐다. 급하게 문을 열다 보니 진묘수의 색이 날아갔다. 머리에는 철로 만든 뿔이 있었는데 운반하는 과정에서 부러지고 말았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랄 발견이었으나, 발굴 과정 또한 처참했다. 


한 번도 도굴이 된 적 없이 1500년을 지켜왔던 왕릉. 보통은 수년이 걸릴 대규모 발굴이지만, 무령왕릉 발굴은 단 12시간 만에 끝이 났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발굴단은 유물을 들어다가 마구잡이로 꺼냈다. 원래 있던 위치를 기록하지 않아 알 수 없게 됐다. 


무령왕릉이 발굴됐다는 소식에 기자들이 몰렸는데 한 기자가 발로 밟아 숟가락 하나가 부러지는 일도 벌어졌다. 


입구 쪽에 있던 청자를 발굴한 지 8시간 만에 무덤은 껍데기만 남았다. 유물을 받아든 박정희 대통령은 왕비의 팔찌를 들고 '이게 순금인가' 하면서 휘어보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당시 발굴단장이었던 김원룡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몇 달이 걸렸어도 그 나무뿌리들을 가위로 하나하나 잘라서 장신구들을 들어냈어야 했다. 고고학 발굴의 ABC가 미처 생각이 안 난 것이다"


그렇게 작은 진묘수가 1500년 동안 최선을 다해 지켜온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 역사상 최고의 발견이었으면서도 최악의 발굴로 남게 됐다. 


인사이트YouTube '문화유산채널[K-HERITAGE.TV]'


진묘수가 우리에게 준 교훈


무령왕릉의 진묘수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건넨 선물은 '교훈'이었다. 


이때 난장판이 된 발굴 현장 경험 이후 현재는 고고학 유물 발굴에는 현장 지휘부를 설치하고 경비를 세우게 됐다. 


천마총 발굴 때는 전체 브리핑 이외에 기자들의 보도를 최대한 통제하고, 발굴단원들이 취재에 응하지 않거나 발굴 현장에 철조망을 치는 등 현장을 봉쇄한 상태로 진행됐다. 


인사이트천마총 백화수피제 천마문 말다래 / 뉴스1


경주 황남대총 발굴을 앞두고 발굴했던 천마총 발굴 때는 무령왕릉 때의 실패가 반면교사가 됐고,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찌 보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를 유물 발굴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