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난 남성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재운 뒤 수천만 원을 훔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이 여성이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동일한 수법으로 최소 4차례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고 추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28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강도상해와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고모 씨(27)를 지난 25일 구속했다.
앞서 지난 22일 고 씨는 의정부시의 한 주택에서 약 한 달간 동거했던 30대 남성에게 약물을 투여해 의식을 잃게 한 뒤 본인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방식으로 약 990만 원을 절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남성은 잠에서 깨어난 후 고 씨의 행동을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남성의 소변을 검사한 결과 벤조디아제핀 계열 수면제 성분이 검출됐다. 벤조디아제핀은 불면증이나 불안장애 치료에 사용되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과다 복용할 경우 의식 잃거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경찰은 23일 오전 1시경 고 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고 씨는 이미 유사한 혐의로 수사망에 올라 있었다. 같은 달 19일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에서 고 씨와 식사를 한 30대 남성이 갑자기 잠에 빠진 사이 약 2000만 원이 고 씨 계좌로 이체됐다.
이 남성은 20일 오전 고 씨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고 씨는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현장에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추정되는 약물 여러 개가 발견됐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남성의 혈액 감정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고 씨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서울 양천구에서 각각 다른 30대, 20대 남성을 모텔 등에서 동일한 방법으로 잠재워 1500만 원과 400만 원을 훔친 혐의로도 고발당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자는 총 4명이며 피해액은 4890만 원에 달한다. 고 씨는 훔친 돈을 개인 물품 구매 등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추가 피해자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
피해 남성들은 모두 결혼정보업체나 지인 소개를 통해 고 씨를 만났다. 의정부경찰서는 고 씨가 처음부터 금품을 목적으로 남성들에게 접근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와 수법, 공범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하지만 고 씨는 "남성들이 스스로 수면제를 복용했으며, 돈도 자발적으로 준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고 씨의 범행이 '강북 모텔 연쇄살인범' 김소영(21)과 유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김소영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남성 6명에게 약물이 든 음료를 먹여 그중 2명을 살해하고 일부에게서 금품을 빼앗아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김소영이 사용한 약물도 벤조디아제핀 성분이었다. 김소영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이유로 처방받은 약을 범행에 악용한 것처럼, 고 씨도 '병원에서 공황장애로 처방받은 약'이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소영의 범행이 알려진 이후 온라인에서는 그가 사용한 약물 목록이 공공연히 공유되고 있다.
27일 X(옛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김소영 레시피' 찾는다" 등 약물 조합법을 묻는 글과 이에 대한 답변 게시물이 여러 건 검색됐다. 일부 게시물은 조회 수가 수십만 건에 이르렀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의사 처방이 필수임에도 불구하고, 텔레그램 등 보안 메신저나 일부 해외 직구 사이트에는 세관 단속을 피해 일반 영양제로 위장해 배송해주는 업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SNS와 직구 사이트에서 모방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내용을 규제하고, 수면제 등 향정신성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