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조의 총파업 예고에 일본 반도체 '몰락사'가 다시 소환되고 있다.
지난 27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정부세종청사 기자단 백브리핑에서 삼성전자 파업 가능성을 두고 인텔과 일본 반도체 기업 사례를 거론했다. 반도체는 한 번 경쟁력에서 밀리면 회복까지 긴 시간이 걸리거나, 끝내 주도권을 되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취지였다.
삼성전자 노조는 연간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배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음 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총파업도 예고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잠정 실적으로 매출 133조원, 영업이익 57조2천억원을 발표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755.01% 증가했다.
김 장관은 삼성전자 이익을 '회사 내부 구성원만의 몫'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삼성전자 이익에는 사회 인프라, 협력기업, 400만명이 넘는 소액주주, 국민연금이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이 단발성 호황으로 끝나는 업종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가 계속 들어가야 하는 산업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일본 반도체는 1980년대 세계 시장을 이끌었다. 1989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 상위 10개사 중 6곳이 일본 기업이었다. NEC가 1위, 도시바가 2위, 히타치가 3위였다. 후지쓰, 미쓰비시, 마쓰시타도 10위 안에 들었다. 시간이 흐른 뒤, 2023년 상위 10개사 명단에는 일본 기업이 단 하나도 없었다.
일본 반도체의 쇠퇴는 노사 갈등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미·일 반도체 협정, 플라자합의 이후 엔고, PC 시대 로직칩 투자 실패, 팹리스·파운드리 분업 모델 전환 지연, 한국과 대만의 추격이 겹쳤다. 1980년대 후반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던 일본 반도체의 점유율은 2023년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도체 기업의 쇠퇴는 투자 여력 약화와 맞물려 진행됐다. 일본 기업들은 메모리 초강자였지만 시장이 PC와 모바일, 서버, AI로 옮겨가는 동안 새 공정과 새 사업 모델에 충분히 올라타지 못했다. NEC와 히타치, 미쓰비시의 D램 사업을 합쳐 만든 엘피다메모리는 일본 정부 계열 금융기관의 지원을 받았지만 2012년 파산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구개발에 37조7548억원을 썼다. 시설투자에는 52조6511억원을 집행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DS 부문 시설투자만 47조4764억원이었다.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어난 배경에는 HBM과 고용량 DDR5 등 AI 반도체 수요가 있었다. 이 시장에서는 다음 세대 제품과 공정 투자가 늦어지는 순간 선두 업체와 추격 업체의 격차가 줄어든다.
성과급 지급 자체가 쟁점의 전부는 아니다. 쟁점은 호황기 이익의 상당 부분을 내부 구성원 보상으로 먼저 떼어내는 공식이 반도체 기업의 투자 체력과 충돌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불황기에도 연구개발과 시설투자를 줄이기 어렵고, 호황기에는 다음 세대 공정과 제품에 더 많은 현금을 넣어야 한다.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이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되면, 차세대 공정 투자와 연구개발, 주주환원, 협력 생태계로 갈 재원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일본 반도체의 몰락은 단순한 노사 갈등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기업들이 새 투자와 사업 모델 전환에 뒤쳐졌을 때 어떤 결과가 오는지는 보여줬다. NEC와 도시바가 세계 1·2위였던 시절에도 일본 반도체의 추락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반도체 산업에서 한 번 놓친 투자 타이밍은 이후 구조조정과 정부 지원만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김 장관은 "노동자의 몫은 분명히 있다"면서도 노사가 현재 여건을 감안해 성숙한 결론을 내야 한다고 했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