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4월 01일(수)

"각자 벌고 더 키워라"... SK하이닉스 1111억이 드러낸 최태원식 지주사 운영

SK하이닉스가 지난해 SK(주)에 지급한 브랜드 사용료는 1111억원이다. 금액만 보면 적지 않다. 다만 이 숫자를 SK하이닉스의 실적과 함께 놓고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브랜드 사용료 부담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렀고, 회사 안에 남은 이익은 다시 투자로 이어졌다. 그 흐름은 13년 동안 쌓이며 지금의 하이닉스를 만드는 데 기초가 됐다.


지난 30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지난해 브랜드 사용료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큰 규모다. 산정 방식은 매출액에서 광고선전비를 제외한 금액의 0.2%를 적용하는 구조다. 절대액만 보면 큰돈이지만, 지난해 SK하이닉스 매출 97조1467억원과 영업이익 47조2063억원에 비춰보면 부담 수준은 높지 않다. 실제 매출 대비로는 약 0.11% 수준이다.


시장이 먼저 본 것은 1111억원이라는 절대액이다. 그런데 SK가 하이닉스에서 거둬가는 몫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브랜드 사용료율 0.2%는 하이닉스에만 적용된 예외 규정이 아니라 그룹 표준 산식이다. 지주사가 계열사 성과를 먼저 흡수하기보다, 상당 부분이 회사 안에 남는 구조가 유지됐다.


SK하이닉스 사옥 전경 / 사진제공=SK하이닉스


하이닉스의 투자 이력은 여기서 갈라진다. SK 편입 직후인 2012년 하이닉스의 시설투자액은 3조9천억원이었다. 하이닉스는 업황 부진기에도 대규모 투자 기조를 유지했고, 이듬해인 2013년 세계 최초로 HBM 개발에 착수했다. AI 반도체 시장이 커지면서 HBM 시장점유율 57%를 확보했고, 지난해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지난해 이천포럼에서 "문 닫기 직전까지 갔던 회사가 SK를 만나면서 세계 최초 HBM 개발, 글로벌 D램 시장 1위, 시총 200조원 달성 등 도약을 이뤄냈다"며 "이 모든 과정은 SK의 과감한 투자,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덕분이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1111억원보다 눈여겨볼 것은 지난 13년 동안 하이닉스가 어떻게 바뀌었느냐다. 2012년 3조4267억원을 들여 하이닉스를 품을 당시만 해도 시장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인수 대상은 영업손실 2273억원을 낸 적자 기업이었다.


돌아보면 SK가 하이닉스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해마다 받아간 브랜드 사용료가 아니라, 기업가치 자체를 끌어올린 데 있었다. 인수 당시 3조4천억원대였던 지분가치는 현재 120조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물론 SK가 하이닉스에만 특별히 느슨한 잣대를 적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브랜드 사용료 0.2%는 그룹 표준이고, 실적이 늘면 사용료도 함께 커지는 구조다. 하이닉스의 대규모 시설투자 역시 기본적으로는 회사 자체 영업현금흐름에서 나온다. 그래도 지주사 몫이 제한적인 수준에서 유지되는 동안 재투자가 끊기지 않았다는 점은 짚을 만하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하이닉스가 본격적으로 역량을 발휘하기 전부터 그 이득을 지주사가  많이 가져가는 구조였다면, 지금처럼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는 여건이 덜 조성됐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SK하이닉스의 2026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100조원대 이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수치가 현실화되면 브랜드 사용료도 2000억원대로 오를 수 있다. 1111억원은 아직 중간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