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17년 만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8강 진출의 꿈을 이뤘다.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아픔을 딛고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것이다.
한국은 9일 일본 도쿄돔에서 펼쳐진 2026 WBC 조별리그 C조 호주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7-2 완승을 거뒀다.
단순한 승리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규이닝 기준 5점 차 이상 승리와 동시에 2실점 이하를 기록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지만, 한국은 이를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류지현 감독은 경기 전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에게 기회를 준 경기이기도 하다"고 말했는데, 선수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한국의 공격은 2회초부터 폭발했다.
안현민(KT)이 선두타자로 나서 좌측 펜스를 강타하는 안타로 출루했고, 뒤이어 들어선 문보경(LG)이 호주 선발 라클란 웰스(LG)의 슬라이더를 완벽하게 포착해 우측 담장을 넘기는 2점 홈런을 터뜨렸다.
도쿄돔 한국 응원석과 더그아웃이 동시에 환호성을 터뜨리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공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3회에는 자마이 존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2루타와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적시 2루타로 3-0을 만들었고, 문보경이 다시 한번 2루타를 작렬시키며 4-0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5회에는 안현민의 볼넷 출루 후 도루 성공, 그리고 문보경의 좌전 적시타가 이어지며 5-0을 완성했다. 복잡한 계산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한국 타선은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회를 만들어가며 점수를 쌓아갔다.
5회말 호주가 로비 그렌디닝의 좌월 홈런으로 1점을 만회해 5-1이 됐지만, 6회 김도영(KIA)의 우전 적시타로 6-1을 만들며 다시 안전권을 확보했다.
8회말에는 위기가 찾아왔다. 김택연(두산)이 등판했지만 볼넷과 번트 상황에서 실책이 겹치며 1사 2루 상황을 허용했고, 트래비스 바자나(클리블랜드 가디언스 트리플A팀)의 적시타로 6-2가 됐다.
조병헌(SSG)으로 교체했지만 커티스 미드(시카고 화이트삭스)에게 볼넷을 내주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삼진과 유격수 뜬공으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9회초 한국은 반드시 추가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김도영의 볼넷으로 시작해 존스의 뜬공 후 상대 유격수 송구 실책으로 1·3루를 만들었고, 안현민의 중견수 뜬공으로 1점을 추가해 7-2를 완성했다.
운명의 9회말, 조병헌이 마운드를 지켰다.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지만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허용해 1사 1루가 됐다.
하지만 윙그로브의 뜬공을 우익수 이정후가 몸을 던져 잡아내며 2사를 만들었고, 마지막 타자를 1루수 뜬공으로 처리하며 승리를 확정했다.
한국 투수진의 활약도 돋보였다. 손주영(LG)이 1회를 막아낸 후 팔꿈치 불편함으로 노경은(SSG)으로 교체됐고, 노경은이 2이닝 무실점으로 안정감을 보였다.
소형준(KT)은 4회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처리했고, 박영현(KT)은 6회초 몸에 맞는 공을 내주고도 더블플레이로 위기를 넘겼다.
7회말 데인 더닝(애틀란타 브레이브스 트리플A)이 등판해 무사 1·2루 위기 상황에서 그렌디닝의 유격수 땅볼을 더블플레이로 처리하고, 2사 3루에서 릭슨 윙그로브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위기를 모면했다.
한국은 최종적으로 7-2 승리를 거두며 승리, 점수 차, 최소 실점이라는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켰다. 대만, 호주와의 최소 실점률 계산을 통과해 조 2위로 8강 진출을 확정했다.
한국은 2006년 WBC 초대 대회 4강, 2009년 대회 준우승으로 국제 대회 야구 강국의 위상을 보여줬지만, 2013년, 2017년, 2023년 대회에서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특히 첫 경기 패배가 전체 흐름을 망가뜨리는 패턴이 반복됐고, 이번에도 일본과 대만에 연패하며 같은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마지막 호주전에서 복잡한 계산을 뚫고 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며 오랜 답답함을 해소했다.
이번 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마이애미까지 전세기를 타고 가자"는 구호를 외쳤고, 득점 때마다 양팔을 벌리는 '전세기 세리머니'로 8강 진출 의지를 다졌다. 더그아웃에서 함께 만들었던 그 날갯짓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