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3월 07일(토)

[신간] 초절임 생강

차성환 시인이 지난 2015년 '시작'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선보이는 두 번째 시집 '초절임 생강'이 문학동네시인선 247번으로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첫 시집 '오늘은 오른손을 읽었다'에서 보여준 독창적인 시적 상상력과 언어 실험이 이번 작품에서도 이어집니다. 함기석 시인이 평가한 "멈출 수 없는 죽음의 걸음, 산 자의 걸음이 되려는 움직씨들의 무한 행보"라는 특징이 새 시집에서도 '걷고' '오르고' '자라는' 움직임의 모티프로 구현됩니다.


차성환 시인의 화자들은 산문시 형태의 긴 문장을 따라 흘러가며 서로 연결되고 이어지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명확한 목적의식보다는 자연스럽고 본능적인 숙명처럼 전개됩니다. '들개'에서 '들깨'로, '잡초'에서 '잡채'로 변화하는 유머러스한 언어적 도약 속에서도 죽음을 암시하는 긴장감 있는 문장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진 제공 = 문학동네


표제작 '초절임 생강'에서 생강은 '시집 먹기'에도 등장하며, 독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생강이 되는 설정을 통해 시 읽기의 경험을 형상화합니다. 


"시큼하고 알싸"한 생강을 삼킨 화자는 "위장부터 서서히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하다 사라지며,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이는 시가 독자를 "웃으면서 울"게 하고 "만족스러워"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허무한 결과를 남긴다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시인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도 드러납니다. '들개'에서 시인은 "양치기" 즉 거짓말쟁이로 규정되며, '재채기'와 '수제비'에 등장하는 "시의 요정"은 시인을 다그칩니다. 요정은 "언어와 밀도와 압력과 기교"가 재채기처럼 불수의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며, "너를 지우"고 "그냥 기다리"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화자는 조바심을 내며 "돈을 벌어야 하는데"라고 하거나 "폼 잰다고" 아웃렛을 찾고, "전 재산을 주고 굉장히 멋진 팔찌를" 사는 등 욕심을 부리다 "한순간에 녹아 사라질" 위기에 처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빛깔과 냄새와 무게와 삐침과 온도와 분위기와 어울림"을 과시하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시를 발표할 때는 사람들이 "저주를 퍼붓고" "내 몸을 찢어발"길 것 같다는 악몽에 시달립니다.


3부의 '잡초' 연작에서는 하강의 에너지가 반전됩니다. 총 일곱 편의 연작시에서 '자라다'의 활용형이 70회 이상 반복되는데, 이는 해설에서 지적한 "의미의 강조를 넘어선 강박적인 반복"으로 절망적 상황에서도 움직임을 멈추고 싶지 않다는 시인의 내적 욕망을 반영합니다.


"쑥떡이 되도록 짓밟"히면서도 "한계를 자기 혼자 뚫고 혼자서 오로지" 자라나는 잡초처럼, 화자는 "지긋지긋하게 어둠 속으로 계속 퍼져내려가"야 하는 운명이지만 "아무 생각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랍니다. 비록 "기울어져서 걸어다"니는 모습일지라도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기를 고집합니다.


이 시집의 모든 시편은 예외 없이 하나의 행이자 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휴식과 공백을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는 종결된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른 연작으로 연결되며 끝없이 이어집니다. 


그 속에서 발견되는 진실은 "지랄같이 자"라나는 삶이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이라는 점과, 한없는 되풀이 속에서도 결핍은 끝내 채워지지 않으리라는 사실뿐입니다.


그럼에도 시인은 여전히 뜨거운 허기를 감추지 않으며 무언가를 계속 갈망할 것이고, 제어하지 못하는 재채기가 튀어나올 때까지 하염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