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과 생산 능력을 앞세워 까지 빠르게 좁혀오자, 국내 대표 그룹 두 곳이 미국 시장에서 손을 맞잡았습니다. 태양광 사업을 키워온 한화와 배터리 공급망을 구축해온 LG가 대형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에서 협력에 나선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이 원가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미국이 요구하는 '현지 제조' 기준에 맞춰 승부판을 먼저 짰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4일 한화솔루션 큐셀부문(한화큐셀)과 LG에너지솔루션은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서 생산하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최대 5GWh 규모로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화큐셀은 이 배터리를 활용해 2028년부터 2030년까지 3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추진할 ESS 프로젝트의 EPC(설계·조달·시공)를 맡을 계획입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의 자회사 버테크(Vertech)가 운영과 유지보수 등 전 주기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협력은 단순한 공급 계약이라기보다 역할 분담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전력망 확충 속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규 발전 설비를 단기간에 늘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전력망 부담을 줄이고,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부하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ESS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태양광 설비만 설치하는 사업보다 ESS까지 결합한 형태가 프로젝트 경쟁력을 좌우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강조해온 배터리 중심 성장 전략과, 김동관 부회장이 주도해온 태양광·에너지 솔루션 확대 기조가 같은 시장에서 구현된 장면"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두 사람 모두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기술 우위뿐 아니라 생산 거점과 공급망 안정성을 중시해 왔다는 점에서, 이번 협력은 방향성이 겹친다는 분석입니다.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대한민국 대표 그룹의 기업가가 가격 경쟁이 아닌 '구조 경쟁'으로 승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한화큐셀은 미국 내 태양광 모듈 제조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조지아주에 '솔라 허브'를 구축해 잉곳·웨이퍼·셀·모듈로 이어지는 통합 생산 체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산 LFP 배터리가 더해지면서, 모듈과 배터리를 모두 현지 생산으로 조달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됐습니다.
한화큐셀은 이미 미국에서 태양광과 ESS를 결합한 사업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2024년 5월에는 4.8GWh 규모의 배터리 구매 계약을 체결해 미국 내 ESS 프로젝트 설치를 마쳤습니다. 같은 해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빅테크 기업 메타가 사용할 전력을 공급하는 태양광·ESS 복합단지의 EPC를 맡아 준공했습니다. 2022년에는 총 2.4GWh 규모 ESS 프로젝트 7건을 추진해 매각하며 사업 역량을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공급과 함께 운영 안정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습니다. 이번 계약은 홀랜드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공급하는 구조로, 한화큐셀이 추진하는 2028~2030년 프로젝트에 필요한 물량을 사전에 확보해 두는 성격입니다.
여기에 버테크의 전 주기 서비스가 결합되면서, 설치 이후 성능 관리와 유지보수까지 하나의 체계로 묶이게 됩니다. 대형 ESS 프로젝트에서는 초기 설치 못지않게 장기 운영 안정성이 금융 조달과 계약 조건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화큐셀 크리스 호드릭 EPC사업부장은 "미국 전력 시장이 요구하는 대규모 ESS 수요에 대응할 기반을 마련했다"며 "태양광부터 ESS까지 통합 솔루션을 제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재홍 LG에너지솔루션 버테크 법인장도 "프로젝트 전 과정에서 협력을 강화해 장기적 파트너십을 이어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번 협력을 두고 "기술 경쟁이 아니라 공급망과 생산 거점이 승부를 가르는 국면에서 나온 선택"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화는 태양광 제조와 EPC 경험으로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갖췄고, LG는 배터리 공급과 운영 체계를 통해 장기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두 그룹이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미국 시장에 맞는 '패키지'를 먼저 만들어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