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22일(목)

"강제 소각하라더니 '세금'도 내라?"...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SK '부담'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3차 상법 개정안)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논의 테이블에 오르면서, 기업 현장에서는 밸류업의 명분과 현실 비용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주당가치가 개선되고 주주환원이 강화된다는 논리는 분명합니다. 다만 자사주를 '무조건 소각'으로만 한정시킬 경우, 기업이 불가피하게 떠안은 물량까지 같은 부득이하게 처리해야 해 오히려 주주가치와 산업 경쟁력이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가장 큰 영향권에 있는 곳은 롯데그룹의 지주사 롯데지주입니다. 롯데지주는 자사주 비중이 높은 대표 기업으로 꼽힙니다. 최근 자사주 5%를 롯데물산에 매각한 뒤에도 자사주 비율이 27.51%입니다. 이 때문에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현실화하면, 롯데지주는 크나큰 부담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롯데지주가 논쟁의 중심에 서는 이유는 단순히 자사주 비중이 높아서만은 아닙니다. 자사주는 회사가 필요할 때 매도해 현금을 만들거나, 재무를 다지고, 투자 자금을 마련하는 데 쓸 수 있는 '비상금' 같은 성격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각'만 허용되면 이 선택지가 아예 사라집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반대로 처분을 허용하면 회사는 자사주를 매도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때부터는 "누구에게 팔았는지", "가격이 적정했는지", "절차가 공정했는지"가 곧바로 쟁점이 됩니다. 시장이 보기에 자사주가 특정 주주에게 유리하게 넘어갔다고 느끼는 순간, 회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주가에도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롯데지주 사례는 이번 논쟁이 단순히 '주주환원'을 늘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사주를 어떻게 다뤄야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지배구조 논란을 어떻게 막을지까지 연결된 문제임을 보여줍니다.


기업들이 말하는 현실의 더 큰 문제는 '비자발적 자사주'입니다. 지주사 전환, 합병·분할합병, 구조조정 같은 굵직한 재편 과정에서 자사주가 의도치 않게 쌓이는 경우가 있는 탓입니다. 이 물량까지 일괄 소각 대상으로 묶이면, 기업은 경영 전략의 선택지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특히 석유화학 등 업황이 흔들려 구조개편이 필요한 상황에서, M&A와 사업 재편의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자사주를 소각할지, 처분할지, 보유할지라는 '운용의 자율성'이 사라지면 기업의 손발이 묶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자발적 자사주를 보유한 SK(주) 사례는 가장 억울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SK(주)는 자사주 비중이 24.6% 수준인데, 이 가운데 15%p는 2015년 SK C&C 흡수합병 과정에서 현물출자로 생긴 물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세무당국은 과세를 미뤄줬습니다. 해당 주식을 사업에 활용한다는 것을 전제로 특례를 적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법이 바뀌어 이 물량을 강제로 소각하게 되면, 회사는 약 5000억원 규모의 법인세 부담을 떠안게 됩니다. '아직' 사업에 활용하지 않았을 뿐, 향후 사업에 활용할 계획을 세웠을 가능성이 있는데도 바뀌는 법으로 인해 결국 세금을 내야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사진 / 인사이트


과거 제도는 회사가 자사주를 "사업에 쓰겠다"는 전제만 갖추면, 당장 세금을 내지 않고 보유하거나 나중에 팔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습니다. 그래서 회사도 그 기준에 맞춰 재무 계획과 사업 전략을 짰습니다. 그런데 소각이 의무가 되면, 예전에 "괜찮다"고 했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 세금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그때는 허용해 놓고, 지금은 소각하라고 하면서 세금까지 내라 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소각이 주당가치에 도움이 되더라도, 소각 과정에서 큰돈이 빠져나가면 투자 계획이 흔들리고 재무가 불안해질 수 있습니다. 채권자들이 더 보수적 판단을 하거나, 시장이 불안해져 주가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국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는 취지가, 회사의 자금 부담을 통해 다시 주주에게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논리가 형성됩니다. 


HD현대와 두산 역시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HD현대는 자사주 비중이 1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이 논쟁의 중심에 서기엔 애매해 보일 수 있지만, 제도가 일괄 적용되면 10%대 자사주를 가진 기업들까지 한꺼번에 처리 시점과 방식을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사진제공=HD현대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필요한 보완책'으로 여겨지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됩니다. 


첫째 "합병·분할합병처럼 회사가 어쩔 수 없이 떠안은 '비자발적 자사주'는 소각 의무에서 빼거나, 별도 기준을 만들어 달라"

둘째 "기존 자사주를 정리해야 하는 기한을 더 늘려 시장 충격과 재무 부담을 줄여 달라"

셋째 "소각만 강요하지 말고 처분(매각)도 허용해 회사가 자사주를 팔아 재무를 개선하거나 투자에 쓸 수 있게 해 달라"


법안이 자사주를 특정 주주에게 유리하게 쓰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회사와 다수 주주가 피해를 보는 경우까지 똑같이 규제하는 건 과하다는 논리입니다. 


형평성 문제도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주가 방어 목적으로 자사주를 스스로 사들인 회사와, 구조개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자사주를 떠안은 회사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입니다. 이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소각만 일괄 강제하면, 제도는 주주환원 강화가 아니라 기업의 재무와 전략을 약화시키는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특히 SK(주)처럼 거액의 세금 문제가 함께 걸린 경우에는 "정부가 기업에 돈을 뜯어낸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다만 '처분 허용'에 대해서는 신중판 판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소각이 이뤄지면 주식 수가 줄어들고, 주당지표가 좋아지는 효과를 시장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처분은 "누구에게 매도했는지", "가격이 적정했는지", "절차가 공정했는지"가 바로 논쟁이 됩니다. 


사진제공=신한은행


지난해 롯데지주가 롯데물산에 자사주 5%(약 1477억원 규모)를 블록딜로 매각한 사례처럼 자사주가 계열사나 우호지분으로 넘어갔다는 해석이 나오면, 법안 취지와 정면으로 충돌했다는 비판이 따라붙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분을 허용하더라도 주주총회 승인, 특수관계인 제한, 공정가치 기준 같은 안전장치를 깐깐하게 설정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자사주 소각 의무화'(3차 상법 개정안)은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원칙적으로 일정 기간 안에 소각하도록 하고, 법 시행 전에 이미 보유 중인 자사주도 유예 기간 안에 정리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