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9일(월)

"한국 기업, 커질수록 손해"... 최태원 회장이 지적한 '한국식 규제'의 역설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한국 경제의 성장 둔화를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며, 성장할수록 기업에 불리해지는 규제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신성장 전략도 제도적 토대가 바뀌지 않으면 작동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입니다.


지난 18일 방송된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최 회장은 "성장이 멈춘 경제는 브레이크가 걸린 자전거와 같아 다시 출발하기가 훨씬 어렵다"며 "한국 경제는 지금 성장의 불씨가 약해진 상태"라고 진단했습니다. 성장 둔화를 단기 경기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로 분석했습니다. 


최 회장은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수치로 설명했습니다. "한국의 성장률은 5년마다 약 1.2%p씩 하락해 왔고, 현재 잠재성장률은 약 1.9% 수준까지 내려왔다"며 "실질성장률은 이보다 더 낮은 1% 안팎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잠재력은 남아 있지만, 정책과 제도가 이를 실제 성장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입니다.


KBS '일요진단'에 출연한 최태원 회장 모습 /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최 회장은 특히 '성장할수록 불리해지는 제도 환경'을 한국 경제의 핵심 병목으로 지목했습니다. 그는 "기업은 성장하면 혜택이 늘어나야 하지만, 현실은 자산 규모가 커질수록 규제와 의무가 계단식으로 증가한다"며 "성장을 통해 얻는 과실보다 규제와 리스크가 더 커지는 구조에서는 기업이 현상 유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성장을 장려하기보다 억제하는 규제 구조가 투자 의지를 꺾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제도 환경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봤습니다. 최 회장은 "경제 성장은 청년 세대에게 '이 나라에서 계속 살아도 되는가'라는 질문과 직결된다"며 "성장이 멈추면 희망이 줄고, 결국 인재와 자본이 빠져나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장 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분배 재원이 줄고 사회 갈등이 확대돼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도 내놨습니다.


해외 사례로는 대만을 들었습니다. 최 회장은 "대만은 사이즈별 규제에 집착하지 않고, 타깃 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해 TSMC를 키워냈다"며 "많은 대기업이 유입돼 경쟁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성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한 규제가 아니라, 성장과 경쟁을 촉진하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형벌 문제도 성장의 걸림돌로 꼽았습니다. 최 회장은 "기업은 투자 시 수익과 리스크를 계산해 의사 결정을 하는데, 징역형과 같은 형사 처벌은 계산 자체가 불가능한 리스크"라며 "예측할 수 없는 형벌 리스크가 남아 있는 한 과감한 투자는 나오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투자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제도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최 회장은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제시하면서도, 이를 규제 개혁의 연장선에서 바라봤습니다. 그는 "AI는 단순한 기술 진보가 아니라 석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수준의 문명적 변화"라며 "국가 전략의 핵심 요소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글로벌 수준의 AI 인프라 구축, AI 스타트업 전용 생태계 조성, 사업성을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PoC 지원체계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진제공=대한상공회의소


특히 "한국 안에서만 쓰는 AI 인프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전 세계가 활용할 수 있는 글로벌 인프라를 목표로 해야 지속 가능한 성장과 투자가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AI 전략 역시 기술 담론이 아니라, 성장을 가로막는 구조를 바꾸는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입니다.


한일 협력도 성장 해법 중 하나로 제시했습니다. 최 회장은 "한일 양국이 유럽연합(EU)의 솅겐 조약과 같은 단일 비자 체계만 도입해도 약 3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며 "양국을 하나의 경제 공동체로 바라보면 새로운 시장과 시너지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EU가 시행하는 '솅겐 조약'(Schengen Agreement)은 가입국 간 국경 통제를 철폐해 마치 하나의 나라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을 말합니다. 유럽 여행 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하며 여러 국가를 넘나들 수 있게 해줘 '여행 편의성'을 높여줍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은 여전히 새로운 성장과 미래를 만들어갈 잠재력이 충분하다"며 "민간이 성장의 리스크를 감수해 도전할 수 있도록, 그 리스크가 과도한 부담으로 전환되지 않게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진제공=SK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