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재계 순위 TOP10 기업 가운데 올해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곳은 단연 '한화그룹'입니다. 연초까지만 해도 한화는 단순한 방산 수출 증가의 수혜 기업으로 분류됐습니다. 하지만 연말에 이르러서는 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단순 수출을 넘어 생산 거점을 국경 밖으로 옮기고, 방산과 조선을 나란히 크게 성장시킨 기업이라는 평가입니다.
한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산과 조선을 함께 묶어 '다음 단계'를 준비 중입니다.
올해 한화를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현지화'일 것입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 WB그룹과 함께 천무(K239) 체계에 들어가는 유도탄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합작(JV)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완제품을 납품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생산과 일부 기술을 현지에 두는 방식입니다. 동유럽 방산 시장을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전략은 실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5년 3분기 영업이익이 8564억원으로 늘었습니다. 방산 수출 증가와 사업 구조 개선 효과가 동시에 반영됐습니다.
다만 현지 생산기지 구축은 자금과 생산능력 투자가 필수적입니다. 회사가 올해 유상증자 계획을 내놨다가 시장 반응을 고려해 조정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비판 속에서도 유상증자를 이뤄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실제 출하량을 늘리고 매출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압박도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동관 부회장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김 부회장의 2026년 포트폴리오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방산과 조선의 결합입니다. 한화는 2024년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했고, 2025년에는 이 조선소에 50억달러(약 7조3500억원)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상선 위주의 국내 조선 전략과 달리, 미국 내 조선 인프라를 직접 확보하겠다는 선택입니다. 방산 수요를 가진 기업이 그 수요를 소화할 조선 기반까지 함께 가져가려는 흐름으로 읽힙니다.
한화그룹 내 조선 사업의 역할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질 전망입니다. 상선 중심에서 특수선과 군함, 정비(MRO) 영역으로 사업 축을 넓히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미국 조선소를 거점으로 삼을 경우, 단순 건조를 넘어 유지·보수와 후속 물량까지 확보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정부가 "미국의 조선은 모든 공정을 미국 내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월에는 연이어 낭보도 전해졌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해군 신규 프리깃 사업과 관련해 한화의 협력을 언급한 것입니다. 아직 계약 내용이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시장의 관심은 한화가 미국에서 어느 공정까지 맡을지에 쏠리고 있습니다. 이 지점이 2026년 한화 조선 사업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입니다.
호주에서도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한화가 호주 조선사 오스탈의 지분을 19.9%까지 확대하는 데 대해 호주 정부 승인을 받으면서, 미 해군 공급망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축이 만들어졌습니다. 미국 필리조선소와 호주 오스탈을 함께 확보하면서, 한화의 조선 사업은 본궤도에 오르는 국면입니다.
방산과 조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주 사업 역시 올해의 한화를 설명해주는 축입니다. 11월 26일 누리호 발사에서 '민간 조립'을 한화가 맡았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발사체 민간화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화시스템은 군 위성용 국산 우주 반도체 개발에도 착수했습니다. 2026년은 우주 사업이 상징적 영역을 넘어 실제 수익 모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기가 될 전망입니다.
다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쪽이 차오르면 다른 한쪽이 비는 일은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올해는 에너지 사업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태양광 부문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화솔루션 큐셀은 미국 세관 통관 지연 등으로 부품 조달에 차질을 빚으며 조지아 공장에서 인력 휴직을 시행했습니다. 미국 내 생산 밸류체인 구축이라는 전략 자체는 유효하지만, 정책과 규제 리스크가 현실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방산과 조선이 빠르게 성장하는 상황일수록, 태양광 사업은 회복 가능성인지, 구조 조정이 필요한지 방향을 분명히 보여줘야 하는 위치에 놓였습니다.
종합하면 김동관 부회장이 그려온 2026년 한화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해졌습니다. 방산 사업은 수출 중심에서 현지 생산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사업 무대도 국내를 넘어 동맹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유도탄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과 호주에서는 조선 거점을 확보해 생산 기반을 넓히고 있습니다. 우주 사업 역시 발사체와 위성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 주도의 제조 구조로 전환하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관건은 실행입니다. 현지 생산 계획이 실제 출하와 매출로 이어지는지 여부가 2026년 한화의 성과를 가를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