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월)

워싱턴에서 LA까지... '신세계' 정용진 회장이 찍은 산업의 '네 축' 보인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연말 미국 출장이 국내 재계와 유통업계에서 적잖은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데 이어, 플로리다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투자회사 1789캐피탈 경영진을 만났습니다. 


같은 일정에서 AI 스타트업 리플렉션 AI 창업자 미샤 라스킨과 면담했고, 로스엔젤레스(LA)에서는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CEO와 회동했습니다.


이 일정을 단순히 '글로벌 네트워킹 출장'으로만 보면 이름값이 큰 인물들만 나열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동 경로를 따라 만난 대상을 산업의 관점에서 묶어보면, 이번 출장은 성격은 달라집니다. 


정치와 자본, 인공지능(AI), 콘텐츠. 정 회장은 워싱턴에서 플로리다를 거쳐 LA로 이어지는 동선 위에서 이 네 개의 축을 차례로 찍었습니다. 국내 유통 본업에서 수익성 개선 흐름이 뚜렷해지는 시점에 맞물린 행보라는 점에서, 신세계의 다음 성장 방향을 가늠하게 하는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오른쪽부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오미드 말릭 1789캐피털 공동 설립자, 트럼프 주니어 / 뉴스1


'첫 번째 축'은 정치입니다. 정 회장이 워싱턴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 주최 성탄절 만찬에 참석하고, 플로리다에서 트럼프 주니어를 만난 대목은 상징성이 적지 않습니다. 


트럼프 주니어가 참여하고 있는 1789캐피탈 경영진과의 회동은, 미국에서 공간 개발이나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정치적 네트워크가 갖는 현실적 무게를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미국 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하려는 기업에게 정치 축은 선택이 아니라 전제에 가깝다는 점에서입니다.


정치 축과 맞물린 '두 번째 축'은 자본입니다. 1789캐피탈은 플로리다 팜비치 지역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인 투자사로, 신세계그룹의 참여 가능성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진1.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오른쪽)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왼쪽).jpg


신세계는 해당 사업에 대해 타당성 검토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유통을 넘어 공간과 개발로 시야를 넓혀온 정 회장의 기존 행보를 감안하면, 이번 만남은 단기적인 투자 검토라기보다 사업 영역 확장의 연장선으로 해석됩니다. 점포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소비가 발생하는 공간과 구조를 먼저 설계하려는 접근이라는 분석입니다.


'세 번째 축'은 AI입니다. 플로리다에서 만난 미샤 라스킨은 구글 딥마인드 출신 연구진이 창업한 리플렉션 AI의 핵심 인물입니다. 


리플렉션 AI는 최근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라스킨이 정 회장을 만나기 위해 직접 플로리다로 이동해 협력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단순한 인사 교류를 넘어 실질적인 논의가 오갔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양측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목표를 이해하고 계획을 세운 뒤 실행과 평가를 반복하는 자율형 AI 에이전트를 유통 전반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논의했습니다. 이 경우 경쟁력의 기준은 매장 수가 아니라 운영의 정교함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일반적으로 소비되는 생성형 AI가 아닌, 기업의 효율적인 운영과 빠른 문제해결·선제적인 문제점 인식 등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이 논의됐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물류창고에서 AI가 활용될 경우 산재를 '제로'에 수렴하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을 비춰볼 때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마지막 축'은 콘텐츠입니다. 정 회장은 LA에서 데이비드 엘리슨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 CEO와 만나 화성국제테마파크 개발과 관련한 협력 상황을 점검했습니다. 


파라마운트의 글로벌 IP를 활용한 상품 개발과 콘텐츠 협력 방안도 논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는 테마파크에 국한된 협업을 넘어, IP를 중심으로 한 소비 경험을 신세계의 오프라인 공간 전반으로 확장할 여지를 점검한 자리로 해석됩니다. 지금은 당장 밝히지 못하는, 새로운 협력 사업이 향후 몇년 뒤 발표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흘러나옵니다. 


사진2.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왼쪽)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오른쪽).JPG


정치가 길을 열고, 자본이 판을 깔며, AI가 운영을 맡고, 콘텐츠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구조입니다. 이번 미국 일정에서 정 회장이 찍은 네 개의 축은 서로 떨어져 있는 듯 보이지만, 신세계라는 하나의 무대 위에서 결합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신세계의 경쟁력은 '얼마나 많이 파느냐'보다 '어떤 구조로 운영하느냐'에 의해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정 회장의 이같은 움직임을 두고 신세계 관계자는 "미국의 핵심적 인물들과의 여러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그룹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골몰하고 있다"며 "아울러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정 회장의 이러한 행보는 실적 흐름과도 맞물립니다. 이마트는 2025년 3분기 연결 기준 순매출 7조4008억원, 영업이익 151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매출은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5.5% 증가하며 수익성 개선 흐름을 분명히 했습니다. 국내 본업에서 체력을 회복하는 국면에서, 정 회장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로 옮겨가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워싱턴에서 LA까지 이어진 이번 일정은 개별 사업 검토의 나열이라기보다, 신세계의 다음 성장 스토리를 구성하기 위한 사전 배치에 가깝습니다. 네 개의 축이 실제 사업으로 어떻게 연결될지는 아직 열려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정용진 회장이 그려놓은 이 산업 지도 위에서 신세계의 다음 행보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 사진제공=신세계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