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LG는 새해를 미리 꺼내 놓았습니다. 구광모 ㈜LG 대표(LG그룹 회장)은 22일 국내외 LG 구성원에게 2026년 신년사를 담은 영상을 이메일로 전달했습니다. 연초의 결의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의 성찰에 무게를 둔 선택으로 풀이됩니다.
LG는 2022년부터 신년사를 연말에 전하며, 구성원들이 차분히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다음 해를 준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메일 제목은 "OOO님, 안녕하세요. 구광모입니다.(Hello, this is Kwang Mo Koo)"였습니다. 구 회장은 영상의 첫머리에서 "올해도 고객을 향한 마음으로 도전과 변화를 위해 노력한 구성원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하며 신년사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 신년사의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미래가 열리는 변곡점이며, 지금까지의 성공 방식을 넘어서는 혁신 없이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는 진단입니다.
구 회장은 "우리는 LG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미래를 꿈꾸며 이를 현실로 만들어 가고 있지만, 우리의 노력 못지않게 세상의 변화도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의 패러다임과 경쟁의 규칙이 바뀌고, 고객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상황에서 과거의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판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구 회장은 혁신의 출발점으로 '선택과 집중'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타협할 수 없는 하나의 핵심 가치를 명확히 할 때 비로소 혁신의 방향을 세울 수 있고, 조직의 힘을 모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선택한 이후에는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수준까지 파고들어야 한다"며 "그 치열한 집중이 고객이 정말 다르다고 느끼는 경험을 만들고, 세상의 눈높이를 바꾸는 탁월한 가치를 완성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구 회장은 "10년 후 고객을 미소 짓게 할 가치를 선택하고, 여기에 우리의 오늘을 온전히 집중하는 혁신이야말로 LG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신년사는 형식에서도 변화를 줬습니다. 영상의 앞부분에는 외부 전문가들의 인터뷰가 배치됐습니다. 기술, 경쟁, 고객, 조직이라는 네 가지 축에서 환경 변화의 속도와 방향을 먼저 짚고, 그 위에서 LG의 선택을 이야기하는 구성입니다. 생성형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술 전환의 흐름, 글로벌 경쟁의 질적 변화, 소비자의 기준 변화, 대기업 조직이 마주한 압박을 외부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기술 패러다임과 관련해 MIT의 수석연구과학자인 조지 웨스터만은 생성형 AI를 전기와 인터넷에 비견되는 전환점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삶의 전반에서 그에 견줄 만한 수준의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경쟁 환경에 대해서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수닐 굽타 교수가 "스타트업은 물론, 글로벌 테크 기업과 전통 대기업까지 기존 전략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며 "과거의 틀을 깨는 사고와 접근 없이는 생존과 성장이 어렵다"고 진단했습니다.
고객 변화에 대한 설명은 트렌드코리아컴퍼니의 전미영 대표가 맡았습니다. 그는 "소비자는 가격이나 품질을 넘어, 왜 이 가격인지, 어떤 의미와 경험을 주는지를 묻는다"며 "그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는 브랜드만 살아남는다"고 말했습니다. 조직 측면에서도 조지 웨스터만은 "AI가 주도하는 변화의 시대에는 경쟁사와 고객, 투자자의 기대가 훨씬 빠르게 진화한다"며 "성공한 대기업일수록 더 빠른 변화가 요구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구 회장의 메시지는 일회성 선언이 아니라, 지난 몇 년간 이어져 온 흐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2019년 신년사에서 '고객'을 LG가 나아갈 핵심 방향으로 제시한 이후, 해마다 고객가치 경영의 내용을 구체화해 왔습니다.
고객의 삶을 바꾸는 감동, 선도적 가치, 지속성이라는 정의에서 출발해, 고객의 불편을 파고들고, 고객을 더 세밀하게 이해하며, 한 번 경험하면 되돌아갈 수 없는 수준의 고객경험을 만들자는 주문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차별적 고객가치에 대한 몰입과, LG 창업 초기부터 이어진 도전과 변화의 DNA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2026년 신년사는 그 연장선에서 한 발 더 나아갑니다. 고객을 향한 방향성은 그대로 두되, 이제는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까지 집중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변곡점이라는 표현에는 위기의식과 자신감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만큼, 선택을 미루는 순간 기회는 사라진다는 판단입니다. 구광모 회장의 이번 메시지는 LG가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그 윤곽을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낸 장면으로 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