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과정에서 좌석 공급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던 대한항공이, 이번에는 '눕코노미'로 불리던 괌 노선의 좌석 수를 줄일 수 있게 해달라며 당국에 심사를 요청했습니다. 합병 당시 내세웠던 자신감과 달리, 수요 급감이라는 현실 앞에서 공급 기준 완화를 요구하고 나선 셈입니다.
지난 13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최근 인천-괌, 부산-괌 노선에 적용되는 시정명령을 변경해달라고 공정위에 신청했습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연도별·노선별 좌석 수를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90% 이상으로 유지하라는 조건을 부과한 바 있습니다. 양대 항공사의 결합으로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경우 경쟁이 제한되고 소비자 편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괌이 여행지로서의 비교 우위를 잃으면서 항공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 괌으로 향하는 180석 규모 항공기에 승객 3명과 항공사 직원 6명만 탑승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좌석이 비어 누워 갈 수 있다는 이른바 '눕코노미'가 가능할 정도로 수요가 위축된 모습입니다.
대한항공은 이 같은 여행 수요 변화를 고려해, 2019년 대비 90% 이상으로 설정된 좌석 공급 기준을 완화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공정위 시정명령에는 급격한 수요 변화 등 중대한 사정 변경이나 외부적 요인에 따른 불가피한 사정이 발생할 경우, 시정명령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유연성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다만 이번 요청이 괌 노선에만 국한되지 않을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청주-제주 노선에 대해서도 시정명령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공정위는 "항공시장에서 소비자 편익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당 노선들의 시정명령 변경 요건 충족 여부를 면밀히 심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합병 당시에는 공급 축소 우려를 일축하며 조건을 수용했던 대한항공이, 이제 와서는 특정 노선의 기준 완화를 요청한 만큼 이번 결정은 기업결합 시정명령의 실효성을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