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본회의에서 61년 만에 필리버스터가 강제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진행하던 무제한 토론 중 우원식 국회의장이 마이크를 차단한 것으로, 1964년 4월 20일 이효상 의장이 김대중 의원의 필리버스터(5시간 19분) 도중 마이크를 끈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전날 본회의에서 62건의 비쟁점 법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사법 제도 개편안, 필리버스터 중지법 등 쟁점 법안 8건의 연내 처리 계획 철회를 요구했고,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합의가 무산됐습니다.
국민의힘은 원내대표 협상이 결렬된 직후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습니다.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토론에서 국민의힘 첫 번째 토론자인 나 의원이 발언을 시작하자 본회의장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나 의원은 민주당을 향해 "입법 독재를 하는, 헌법을 파괴하고 법치주의를 무너뜨리고 삼권분립을 파괴하는 입법 내란 세력"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우원식 의장은 나 의원이 의장석에 인사를 하지 않자 "인사 안 하느냐"며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발언 전 의장에 대한 인사는 국회의 관례입니다. 우 의장의 요구에도 나 의원이 무시하고 토론을 계속하자, 우 의장은 "인격의 문제"라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우 의장은 여러 차례 나 의원을 제지하다가 결국 "의제와 관련 없거나 허가 받은 발언의 성질과 다른 발언은 해서는 안 된다"며 국회법의 회의 질서 유지 조항을 근거로 마이크를 차단했습니다.
국회법은 의제와 관계없는 발언을 금지하고 있지만(102조), 상대적으로 발언 범위가 자유로운 필리버스터 중 의장이 토론자의 발언을 강제로 중지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조치입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입틀막" "사퇴하세요!" "우미애(우원식+추미애)"라고 외치며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
민주당 의석에서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려와라" "쇼츠 분량 다 땄으니 내려오라"는 고성이 이어졌습니다.
나 의원이 무선 마이크를 사용하려 하자 우 의장은 "이런 국회의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나 창피해서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며 정회를 선포했습니다.
의장실에 항의를 다녀온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긴급 입장문을 통해 "마이크를 끈 것은 의장 스스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폭거를 저지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또한 "임의로 회의를 정회한 것은 향후 모든 필리버스터를 의장이 완전히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참담한 조치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날의 극한 대치를 시작으로 여야는 이날부터 시작되는 임시국회 내내 정면 대결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국민의힘은 임시국회에서 쟁점 법안 상정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의원별 필리버스터 순번을 미리 배정해둔 상태입니다.
국민의힘은 천막 농성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회 본관 앞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농성을 위한 천막이 설치됐으며, 전국 253개 지역구 당협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분산 천막농성과 1인 시위도 검토 중입니다.
대규모 동원 방식의 장외 투쟁에 대한 피로감을 줄이고, 지역별로 상시적 여론전을 펼치겠다는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