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의 위성, 신동빈의 타워가 만났습니다. 서울 잠실 한복판,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국가 기간 통신망에 문제가 생겨도 지하 종합방재센터의 모니터에는 끊기지 않는 통신선이 그려집니다.
꼭대기 위를 지나는 스타링크 위성 덕분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층 랜드마크가 재난 통신 실험장의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지난 4일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지하 1층 종합방재센터와 22층 피난안전구역 두 곳에 미국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연동한 '스타링크존(Starlink Zone)'을 구축해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습니다.
국내 육상 건물에 스타링크가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롯데는 향후 타워 내 다른 피난안전구역과 단지 내 인파가 몰리는 주요 구역으로 스타링크존을 단계적으로 넓힐 계획입니다.
스타링크는 지구 저궤도(LEO)를 도는 수천 개의 소형 위성을 통해 인터넷을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지상 기지국과 해저 케이블에 의존하는 기존 통신망과 달리, 위성-지상국-단말기를 잇는 별도 회선을 통해 접속하기 때문에 지상망에 사고가 나도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습니다. 롯데가 롯데월드타워 재난·방재 시스템에 스타링크를 얹은 이유입니다. 화재나 정전, 공사 중 단선 등으로 도심 기지국이 마비되거나, 대피 인파의 통화·데이터 사용이 한꺼번에 몰려 기지국이 다운되는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백업 통신'을 유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경찰·소방·해경 등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한 전국 단위 재난안전통신망(PS-LTE·세이프넷)을 구축해 운영 중입니다.
다만 이 통신망은 공공기관 전용 폐쇄망에 가깝고, 초고층·대형 복합시설이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상용 백업망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롯데월드타워의 스타링크 도입은 공공 재난망과는 별도로, 민간 랜드마크가 스스로 '두 번째 통신선'을 깔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롯데의 파트너는 KT SAT입니다. KT SAT는 이날 SM그룹 선박관리사 KLCSM과 롯데월드타워를 국내 첫 스타링크 고객으로 공식 발표하며, 해운·항공·건물 등 '모빌리티·인프라' 영역을 중심으로 스타링크 기반 위성통신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놨습니다.
도심 초고층 빌딩이 해상·산악 지역과 나란히 위성통신의 시험대가 된 셈입니다.
롯데월드타워는 기술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받을 준비가 된 건물입니다. 이미 한강 물과 지하 200m 지열을 활용한 대형 히트펌프 설비를 통해 냉난방 에너지를 공급받는 등, 에너지·환경 측면에서 국내 대표적인 '스마트 타워'로 꼽힙니다. 여기에 위성 기반 백업 통신망까지 더해지면, 에너지와 통신 모두에서 외부 충격에 강한 인프라를 갖춘 '안전지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스타링크 자체는 일반 가정용도 월 8만7000원, 장비 55만원 수준의 요금으로 제공되는 '생활 인터넷' 서비스입니다. 롯데는 이 상용 기술을 단순 편의가 아니라 재난 안전 인프라로 끌어올려 쓰겠다는 선택을 한 셈입니다.
방재센터와 피난안전구역을 중심으로 통신을 우선 배분하면, 실제 위기 상황에서 구조 인력과 피난 인원 간 위치 공유, 영상 전송, 실시간 안내 방송 등 다양한 형태의 '데이터 기반 안전 관리'를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롯데월드타워의 이 같은 시도는 '또 다른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됩니다.
전국 곳곳에 병원,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물류센터, 쇼핑몰을 운영하는 대기업 입장에서, '지상망+재난망+위성망'으로 통신을 2중·3중화하는 흐름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롯데가 초고층 랜드마크에서 먼저 판을 깐다면, 다른 그룹들도 주요 거점 시설에 비슷한 백업망을 검토할 명분이 생깁니다.
머스크의 위성과 신동빈 회장의 타워가 만난 이번 선택은 그래서 단순한 '신기술 도입' 이상의 메시지를 던집니다. '혹시 몰라서' 깔아두는 통신선 한 줄이, 재난이 닥친 순간엔 수천 명의 생명을 잇는 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국내 대기업이 먼저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