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 4차 발사가 성공했습니다. 2일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이날까지 누리호 4차 발사를 통해 발사된 큐브위성 12기 중 9기와 교신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놀라운 이번 발사의 성공을 계기로 주목받는 곳은 우주항공청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뿐만이 아닙니다. 국내 대표적인 기업 한화그룹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번 비행은 민간 기업이 처음으로 체계종합을 맡아 수행한 발사였고, 10년 이상 준비해 온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우주 전략이 본격 궤도에 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27일 새벽, 누리호 4호기는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516㎏급 과학위성 1기와 12기의 소형 위성 등 총 13기를 고도 약 600㎞ 태양동기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탑재 중량만 약 960㎏으로, 누리호 발사 사상 최대 규모입니다.
3차 발사가 시험적 성격이 짙었다면, 4차는 두 배 가까운 무게를 상업용 수준 궤도까지 실어 올린 사실상 첫 본격 임무였습니다. 특히 누리호 6회 발사 계획 가운데 민간 기업이 제작·조립을 책임지고 수행한 첫 발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분석입니다.
김동관 부회장이 이끄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발사에서 '발사체 제작'과 '총조립', '협력업체 관리', '발사 운용 지원'까지 전 과정을 총괄했습니다. 그동안 항우연이 담당해 온 체계종합 역할을 민간 기업이 넘겨받은 첫 사례로, 우리나라 발사체 산업이 '연구기관 중심' 단계에서 '민간 기업 중심' 단계로 넘어가는 전환점으로 평가됩니다.
현장에서는 한화의 축적된 품질 시스템이 성공의 기반이 됐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구 인력은 1년 이상 고흥 현장에 상주하며 여러 기업에서 제작한 부품을 하나의 발사체로 통합했습니다. 항공기 엔진을 생산해 온 품질 기준을 누리호에 그대로 적용하되, 발사체 특성에 맞게 수십 개 협력사와 기준을 재정립하는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항우연 연구진과의 협업 과정은 일 단위로 기록돼 데이터베이스로 축적되고 있으며, 이는 이후 5·6차 발사와 차세대 발사체(KSLV-Ⅲ) 개발의 공통 자산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누리호의 엔진 제작도 한화가 맡았습니다. 누리호는 75t급 액체엔진 5기와 7t급 엔진 1기로 구성돼 있으며, 한화는 지금까지 75t급 34기, 7t급 12기 등 총 46기의 엔진을 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한 기를 만드는 데 6개월이 걸렸지만, 공정 개선을 거쳐 현재는 약 3개월 수준으로 단축시켰습니다. 국내에서 누리호급 중·대형 액체엔진을 전 주기 제작할 수 있는 기업은 사실상 한화가 유일합니다.
이번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한화는 2014년 삼성의 방산 계열사를 인수한 이후 항공·우주 역량을 체계적으로 강화해 왔습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방산·항공 사업을 기반으로 그룹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우주로 설정했고, 인력과 기술을 10년 넘게 모아온 셈입니다.
우주 사업의 전면에는 김동관 부회장이 서 있습니다. 그는 2021년 한화솔루션 전략부문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사직을 맡으며 발사체·위성·지상체 사업을 통합하는 컨트롤타워인 '스페이스허브'를 출범시켰습니다. 누리호 1차 발사 직후 "엔지니어들과 함께 우주로 가는 지름길을 찾겠다"고 밝힌 것도 김 부회장이었습니다.
한화의 우주 투자액은 2024~2025년 누적 기준 9000억 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승연 회장은 5년 만의 현장 경영 재개 첫 일정으로 김동관 부회장과 함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R&D 캠퍼스를 방문한 바 있고, 방명록에 "우주 향한 도전, 이제 시작"이라는 문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부자의 우주 전략이 누리호 4차 성공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번 발사 성공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중·대형 발사체 엔진을 자체 설계·제작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민간 기업이라는 평가를 확고히 했습니다. 체계종합 능력까지 입증한 만큼 향후 누리호 5·6차 발사, KSLV-Ⅲ, 우주 수송체 사업에서 한화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누리호 4차 발사는 한화가 대한민국 발사체 산업에서 '독보적 중대형 엔진 제작사'로 입지를 굳혀 민간 우주 시대의 첫 장을 연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김승연·김동관 부자의 장기 우주 전략이 향후 글로벌 사업 기회로 어떻게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